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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중도층, 정치 지형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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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중도층, 정치 지형을 바꾸다

입력
2016.04.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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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수도권 성적표 충격적

12년 전 탄핵 정국 때보다 처참

‘반사이익’ 더민주ㆍ국민의당에도

“안주하지 말라” 경고성 메시지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심은 벼락같이 내리쳤다.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 하에서 160석이 예상됐던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은 고사하고, 더불어민주당에게 원내 1당 자리까지 내줬다. 수도권만 보면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천막당사까지 차렸던 2004년 탄핵 정국 때보다 더 혹독한 참패다. 2004년 수도권 전체 97석 중 40석(41.2%)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전체 122석 중 35석(28.6%)에 불과했다. 헌정 사상 수도권에서 집권 여당이 기록한 최악의 성적표다.

이 심판의 반사이익을 챙긴 것은 더민주와 국민의당이다. 그러나 더민주는 원내 1당을 차지해 놓고서도 정당득표율에선 3위에 머무는, 전례를 찾기 힘든 불명예를 기록했다. 국민의당은 호남을 싹쓸이하긴 했으나, 수도권의 심판 물결 속에서도 고작 2석을 얻는데 그쳤다. 제3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패자는 분명하지만 승자는 없는 선거, 민심은 성났지만 대안은 찾지 못한 것이 20대 총선의 결과인 것이다.

이 같은 충격적인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한국일보가 4월 5~6일 진행한 제3차 유권자 조사에서 불과 한 달 전까지 38%의 지지율을 유지하던 새누리당 지지율이 28%까지 떨어지고 더민주당 지지율이 정체됐으며, 국민의당 지지율은 급상승 했다. 여대야소 전망이 흔들린 것이다.(본보 4월8일자 1면 “與心 속속 이탈...여대야소 전망 흔들린다”)

이 거센 민심의 심판을 주도한 것은 바로 정치참여적 중도층이었다. 통상 유권자 40%는 특정 정당에 귀속되지 않고, 시기에 따라 지지정당을 바꾸거나 때로 투표를 포기하는 무당파로 분류된다. 이들 중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부류가 기존 야권 지지자에 합세해 정권 심판에 급격하게 힘을 싣는 모습이 관찰됐다. 선거 기간 새누리당 지지기반인 대구ㆍ경북(TK)과 부산ㆍ경남(PK)의 5060세대에서 새누리당 지지율이 급락하고 정권심판론이 상승했으며, 수도권 및 40대 중간층에서도 정부 지지자들의 이탈이 늘어났다.

이들은 정권심판을 위해 더민주를 전략적으로 지지해줬지만, 정당 투표에선 기존의 지역질서에 안주하려는 더민주에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더민주가 반란을 일으킨 부산에서도 더민주(26.6%)와 국민의당(20.3%) 정당득표율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중도층이 교차 투표로 야당 심판권을 행사했다는 뜻이다.

호남 민심 역시 수도권 경합지에서 새누리당과 경쟁하지 않고 호남 올인 전략을 편 더민주에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국민의당을 밀어줌으로써 호남지역에 안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를 두고 호남 지역주의란 비판이 나오지만, 불과 한달 전 더민주가 인재영입 등으로 혁신을 주도할 때 국민의당에 비해 두 배 이상 지지를 몰아준 것이 호남 여론이었다. 대안을 내놓고 새누리당과 경쟁하지 못하고 식상한 단일화란 정치 공학에 안주한 더민주에 경고를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의당은 이 같은 양당 기득권 정당에 성난 중도층이 일시적으로 탄 말에 가깝다. 국민의당은 선거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호남에서 새로운 인물을 내놓지 못했고 수도권에서는 당선권에 근접한 변변한 후보도 없었다. 국민의당이 이번의 작은 승리에 도취할 경우 상승한 속도만큼 빠르게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 흐름을 주도한 중도층은 실체는 무엇인가? 아직 우리 정치권이 제대로 인식하거나 규명하지 못한 존재에 가깝다. 이들은 정치인들의 열렬한 팬이 아니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나오지 않는, 생활 현장에 밀착해 일상을 바쁘게 사는 이웃들이다. 수백만의 비정규직 근로자거나 자영업자, 또는 청년 실업자일 수도 있다. 여론 조사의 혼란도 이들의 민심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관심은 누구의 당선도, 누구의 정권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다. 여론조사상 국민의 60%가 한국경제와 안보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근원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를 외면한 채 단일화니 하며 공학적 논의가 지배하고 ‘우리가 남이가’식 지역주의적 호소나 읍소 퍼포먼스에 목매는 정치권에 대해 이들이 이번 선거에서 직접 심판에 나선 것이다. 기존 여당 지지층이 투표를 포기한 상황에서도 이번 선거투표율이 오른 것은 이 성난 중도층이 드디어 정치에 나서고 있다는 신호다.

정한울 객원기자(고려대 연구교수)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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