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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출신이 선생님 되기 '바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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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시 출신이 선생님 되기 '바늘귀'

입력
2016.08.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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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 60% 안팎 수시로 뽑는데…

“학교 정규 과정을 안 거친 사람

학생 가르치라고 뽑는 건 문제”

“정시에선 제한이 없다” 강변도

2. “검정고시 제도 불신 말아야”

응시생 47%가 “불가피한 사유”

교사 자질은 면접 등 서 가려야

교대들 “헌재 결정 때까지 유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이들이 밝게 자라는 과정을 지켜 보는 교사가 되고 싶을 뿐이에요.”

지난해 8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학력을 딴 정인주(17)양은 경기 용인 소재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다. 특별히 말썽 피운 적도, 그렇다고 명문대 진학을 위해 죽도록 공부한 적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소개한 정양은 중학교 2학년 때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교사 부부였던 부모 영향이다. 정양은 “치열한 입시 경쟁을 눈 앞에서 경험한 부모님이 자유롭게 진로를 고민해보라고 먼저 권했다”고 말했다. 대안학교에서 시작한 교육 봉사활동에 천착하며 교사 꿈을 꾸기 시작했지만 교사와 상담 하면서 전국 교대 가운데 수시모집에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양은 “모든 수험생에게 정시와 수시 두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검정고시생이란 이유로 기회가 박탈 됐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가 검정고시 출신 학생의 수시모집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체 모집 정원의 60% 가까이 수시로 뽑는 교대 모집 추세를 감안하면 검정고시생이 초등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은 터무니없이 좁은 셈. 대학은 교사 직업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정당하다고 강변하지만, 검정고시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영한 조처일 뿐이라는 의견도 많다.

2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등에 따르면 전국 11개 교대는 지난 5월 검정고시 출신 학생들의 지원을 제한하는 수시모집 요강을 각 대학 홈페이지에 잇따라 게시했다.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검정고시 합격자 불가’ 조항이 달려 있어 검정고시생은 사실상 지원할 수 없다. 대교협 관계자는 “교대는 수시모집에서 줄곧 검정고시생의 지원을 제한해 왔다”며 “다만 2016학년도부터는 기초생활수급자전형과 특수교육대상자전형만이라도 검정고시생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정양은 이 같은 모집 요강이 직업 선택의 자유, 교육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단해 이달 4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가 검정고시 출신 학생의 수시모집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초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가 검정고시 출신 학생의 수시모집 기회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교대는 교사 직업의 특수성과 대학의 선발권을 전면에 내세운다. 지방 소재 한 교대 입학본부장은 “교사 양성기관인데 학교 정규 과정도 안 거친 사람을 남 가르치라고 뽑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다른 교대 입학처 팀장은 “가정 생활이 어려워 검정고시를 택한 학생들에겐 미안하지만 우리가 뽑고 싶어하는 교사상은 검정고시생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성적만으로 뽑는 정시에선 제한이 없다는 이유를 강조하기도 한다. 결국 공부 잘하는 애들만 뽑겠다는 얘기다.

반면 편견과 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류광옥 변호사(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는 “교대 수시모집 가운데 ‘재외국민전형’은 우리나라 정규교육 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외국 출신 학생을 서류와 면접만으로 선발한다”며 “가정 환경, 학교 부적응 등을 이유로 검정고시를 택한 학생에게 ‘낙인’을 찍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승민 경기 소명학교(비인가 대안학교) 교사는 “교사가 될 자질은 면접 등 전형 과정에서 가려낼 수 있고, 공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는 대학 4년 교육 과정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검정고시 제도 자체를 불신해 모집 제한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다수 학생이 ‘내신 세탁’이나 수능 다 걸기(올인)를 위해 전략적으로 검정고시를 선택하는데, 수시모집에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펴낸 2014년 ‘검정고시 반세기, 미래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검정고시생 241명 중 10명(4.1%)만 ‘내신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택했다고 답했다. 가장 많은 응답은 ‘가정 환경, 질병 등 이유로 정상적으로 정규 학교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115명ㆍ47.7%)이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불가피한 사유로 학교를 못 다녀 검정고시에 응시한 학생도 많다”며 “환산 점수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선발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특정 직업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의 일부를 원천적으로 막은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7년과 2013년 “수시 전형에 검정고시생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에 해당하는 차별 행위”라며 수시모집 제한을 둔 일부 대학에 시정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교대들은 “헌법소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요강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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