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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산별 노조 기업별 전환 허용 대법 판결에 대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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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산별 노조 기업별 전환 허용 대법 판결에 대한 우려

입력
2016.02.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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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별 노조 산하에 있는 지부가 스스로 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별 노조로 전환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일 금속노조 발레오전장(옛 발레오만도) 지회의 기업노조 전환 총회 결의를 무효로 해달라며 금속노조 위원장 등이 낸 소송에서 대법관 8대 5 의견으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판결이 최종 확정될 경우 그 동안 산별 노조 중심으로 진행된 노동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쟁점은 금속노조 산하조직이라 독자적인 단체교섭 능력이 없는 발레오전장 지회가 자체 투표를 통해 기업별 노조로 탈바꿈하는 게 법적으로 가능한가였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금속노조 발레오전장 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010년 노사분규로 직장폐쇄가 장기화하자 금속노조의 투쟁 방침에 반발해 총회를 열어 기업별 노조 전환을 결의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산별 노조 지회의 기업별 노조 전환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독자적인 규약과 집행기관을 갖는 등 독립성이 인정되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자체적인 조직 형태 변경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5명의 대법관은“산별 노조의 조직 형태 변경 결의 주체는 산별 노조뿐이고 발레오전장 지회는 독립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다른 해석을 내놨다. 이런 소수 의견은 “발레오전장 지회가 독자적인 단체교섭을 체결한 적이 없어 조직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1,2심 판결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결국 파기환송심에서는 발레오전장 지회의 독립성 여부가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법원은 “노조 조직 형태 선택에 있어 노동자의 자주적 의사 결정이 산별 노조 조직 유지의 필요성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선언을 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이런 의미와는 별개로 사측에 부당하게 악용될 가능성이 있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사용자측이 산별 노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섭권이 약한 기업별 노조로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 노조 내부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 발레오전장 지회의 기업 노조 전환 과정에서 사측이 노조파괴 컨설팅으로 악명이 높은 창조컨설팅을 동원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2년 공개한 창조컨설팅 내부 문서를 보면 “회사는 조직 형태 변경을 위해 금속노조 대항 세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발레오전장 외에도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에 유사한 사례가 적지 않고 관련 소송도 여러 건 계류 중인 것을 보면 이런 우려는 충분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법원의 판결이 이런 현실적 상황까지도 고려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산별 노조 설립은 1997년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실시되는 등 고용이 불안해지자 노조 교섭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노동관계법이 개정돼 가능해졌다. 산별 노조의 기업별 전환 문제는 이런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 사법부가 노동자의 자주적 의사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 보다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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