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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파고든 귀신놀이… 섬뜩한 맹신이 증오ㆍ저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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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파고든 귀신놀이… 섬뜩한 맹신이 증오ㆍ저주로

입력
2015.07.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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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번지는 오컬트 문화… 찰리찰리 유튜브 동영상

"ㅇㅇ이가 사고를 당할까" 이상심리 자극, 이성 앗아가

또래집단 소속감에 매몰, 속임수 모른채 무조건 신봉

성서에 나오는 '앤돌 마을의 마녀'를 묘사한 장면(1681년 제작).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전투를 앞두고 무당에게 부탁해 사망한 스승 사무엘을 불러냈다. 사무엘은 조언 대신 죽음이 다가왔다 전하고 다음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전사한다.
성서에 나오는 '앤돌 마을의 마녀'를 묘사한 장면(1681년 제작). 이스라엘의 왕 사울은 전투를 앞두고 무당에게 부탁해 사망한 스승 사무엘을 불러냈다. 사무엘은 조언 대신 죽음이 다가왔다 전하고 다음날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은 전사한다.

‘찰리 찰리 챌린지’놀이를 시연한 동영상을 보면 청소년들이 혹(惑)할만하다. 실제로 그럴 듯하다. ‘Yes’(예)와 ‘No’(아니오)가 적힌 흰 종이 위에 연필 두 개를 십자로 포개 놓고 ‘서양귀신’으로 불리는 찰리를 소환해 단문으로 질문을 하는 형식이다. 동영상은 위에 올려진 연필이 시연자의 질문에 따라 예 또는 아니오 쪽으로 저절로 움직이는 걸 담고 있다. 1990년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데미 무어, 페트릭 스웨이지의 미국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에서 영혼이 된 스웨이지가 동전을 끌어올리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유튜브에 올해 올라온 이 놀이 영상만 66만여개에 달하고, 수백만 회에 걸쳐 공유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하는 속임수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연필 접합점이 매우 약한 구도라 작은 호흡, 진동, 책상에 가해지는 힘 등의 많은 변수에 의해서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기대감에 자신도 모르게 호흡 등을 통해 연필을 움직이게 하는 ‘반응 기대’(response expectancy)’라는 무의식적 작용이라는 설명도 있다. 실제로 코 호흡만으로도 쉽게 움직이지만 행위자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눈치채지 못한다.

문제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데 있다. 인터넷 카페 등에 올라온 청소년들의 각종 체험담을 보면 섬뜩하다. 찰리에게 하는 질문 내용이 그렇다. “내일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내가 내일 죽을까” “00이가 1주일 뒤에 사고를 당할까”식의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해댄다. 그런데 연필이 ‘예’쪽으로 움직인다면 심각한 정서적 불안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상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니다.

지난달 수도권의 한 중학교에서 A(33) 교사가 오전 일찍 출근해 난동을 피웠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1학년 교실로 들어서더니 “귀신이 있다”며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다 유리창을 깼다. 옆 교실로 가서는 탁구를 치던 학생까지 폭행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교사는 며칠 전 학생들이 교실에서 찰리 찰리 챌린지를 한 것을 본 뒤 악몽에 시달려 왔다고 한다. 학생들은 “서슴없이 고민을 들어줄 만큼 배려심 많고 열정적인 선생님이었다. 그런 행동을 할 분이 아닌데 정말 이상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병력(病歷)상으로 정신 질환을 앓은 적이 없는데 믿을 수 없는 진술을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 신분이라는 불안감과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이상 행동의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놀이가 일종의 촉매가 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수도권의 모 중학교에서는 지난 5월 큰 소동이 난 적도 있다.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이 놀이를 한 뒤 방과 후에 학교 내에서 종이와 연필을 태운 뒤 다 끄지 않아 불이 날 뻔 한 것이다. 찰리 찰리 챌린지는 공포감을 심어줄 요량으로 이 놀이를 마친 뒤 종이, 연필을 태우지 않으면 찰리의 저주를 받는다는 게임 종료 원칙이 있다.

사실 청소년들의 이러한 오컬트(Occultㆍ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ㆍ초자연적 현상) 문화 형성에는 호기심 못지 않게 현실세계와 대면하기 두려워하거나 도피하려는 심리가 깔려있다. 분신사바, 위자보드, 여우창문, 나홀로 숨바꼭질, 그림자 성형놀이 등이 최근 수년 동안 유행해 온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자아 형성기인 청소년 시기에는 강령술 놀이를 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자칫 이상 심리 유발뿐만 아니라 사이비종교처럼 맹신해 범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 공포체험 카페에서는 폐교를 찾아 강령술 놀이를 했고, 평소 거슬리게 생각해 온 사람이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으면 좋겠다는 질문을 했다는 글이 버젓이 게시돼 있다. 표창원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장은 “청소년 시기엔 이익과 상관없이 자신의 믿음에 동조하는 그룹을 형성해 심적 안정을 찾으려 한다. 이 조직을 만일 인정하지 않는 이가 생기면 강한 반감으로 이어져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불안감이 극도에 달할 때는 우연히 초자연적 현상을 접하게 되더라도 원인을 따지려 들지 않고 무조건 신봉하며 심적 안정을 찾으려 든다”며 “선진국처럼 상담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ankookilbo.com

요즘 중·고교생들 사이에 강령술 놀이가 유행하는 가운데 심리적으로 여린 청소년들에게 악형향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중·고교생들 사이에 강령술 놀이가 유행하는 가운데 심리적으로 여린 청소년들에게 악형향이 크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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