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조원일 기자

등록 : 2016.02.05 04:40
수정 : 2016.02.05 08:50

[단독] “성범죄는 대부분 우발적” 통념 틀렸다

형사정책연구원, 서울ㆍ인천 전자발찌 부착자 200여명 전수조사 결과

등록 : 2016.02.05 04:40
수정 : 2016.02.05 08:50

서울 인천 전자발찌 부착 235명 분석

짧은 치마, 늦은 귀가 등 원인보다

새벽 집에 있는 20대 여성 주타깃

계획적 성범죄가 두 배 이상 많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하 형정원)이 서울과 인천의 전자발찌 부착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새벽 시간 집에 있던 20대 여성을 계획적으로 노린 성범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짧은 치마, 짙은 화장과 생머리, 늦은 귀가 등 여성들의 외모와 행동 때문에 성범죄가 일어나기 쉽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은 연구결과다. 이에 따라 성범죄 예방대책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의뢰로 형정원이 발간한 ‘성범죄 원인 및 발생환경분석을 통한 성범죄자 효율적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서울의 5군데 보호관찰소 및 인천보호관찰소가 감독하고 있는 피보호 관찰자 235명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4일 밝혔다. 이들 피보호 관찰자는 성폭행 또는 강제추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법원으로부터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은 남성들로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124건, 아동ㆍ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 111건이다.

분석결과 성인 성범죄 피해는 20대(55명ㆍ44.4%)에 집중됐다. 성폭행 범죄의 경우 20, 30대가 주로 피해를 당하는 반면 강제추행의 경우 20대 10대 순으로 피해가 많았다. 가해자의 연령은 40대(55명)와 30대(45명)가 많았다.

연령 분석 결과는 쉽게 예상되는 내용이지만 성범죄가 발생한 장소, 시간, 계획성 유무는 통상적인 인식을 크게 벗어난다. 우선 계획적 성범죄(84건ㆍ67.7%)가 우발적 범죄(40건ㆍ32.3%)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 등을 보고 성충동을 참지 못한 가해자가 우발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범행 장소가 피해자 주거지(45건ㆍ36.3%)인 경우가 공공장소(23건ㆍ18.6%)나 노상(10건ㆍ8.1%)인 경우보다 훨씬 많은데다가, 피해자 집에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대부분(41건)이 피해자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점은 충격적이다. 특히 성폭행인 경우 피해자 주거지 비율(41.8%)이 더 높았으며 공공장소에서는 성폭행(11.7%)보다 강제추행 범죄(52.4%)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성폭행의 경우 범죄자가 사전에 피해자를 물색한 후 치밀한 계획을 짜고 범행에 옮긴다는 뜻이다.

가해자가 범행장소까지 이동한 거리도 계획적으로 범죄를 실행에 옮기는 경향을 뒷받침한다. 형정원이 가해자의 주거지와 범행장소까지의 거리 평균값을 측정한 결과 피해자 주거지에서 범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자신의 주거지에서부터 평균 40.72㎞를 이동해 공공장소(17.51㎞)나 노상(9.6㎞) 범죄에 비해 장거리 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검거를 우려한 가해자가 가급적 자신의 거주지에서 먼 곳을 범행 장소로 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범죄가 발생한 시간을 살펴보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가 47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오전 6시~낮 12시가 26건,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가 23건 순이었다. 성폭행과 강제추행 모두 새벽시간에 가장 많이 발생했고, 그 다음으로는 성폭행 범죄는 오전 6시~정오에 25건(24.27%), 강제추행 범죄는 오후 6시~자정에 6건(28.57%)이 발생했다. 보고서는 성범죄자가 이른 오전 잠들어 있는 피해자를 겨냥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정숙 형정원 부연구위원은 “피해자의 짧은 치마나 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연구 결과 이를 입증할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며 “피해 여성 때문에 성범죄가 발생한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걸 말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경찰 등이 내놓은 성범죄 예방 대책은 여성들에게 노출을 피하라거나 밤늦은 시간 귀가하지 마라는 식이어서 성범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범죄 예방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에도 경찰청 공식 블로그인 폴인러브에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이유로 ▦긴 생머리 ▦벗기기 쉬운 옷차림 등을 언급한 글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여성의 복장이나 심지어 머리 스타일까지도 성범죄의 원인이 된다는 사회적 통념은 남성중심적 사고가 만든 그릇된 신화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가해자가 피해자인 10대로부터 유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게 버젓이 유포되는 상황에서 가해자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는 가로 사회의 초점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부연구위원은 “성범죄 발생 원인으로는 피해자 요인보다 가해자의 왜곡된 성인식 등 가해자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함께 여성 독신자 밀집 구역의 CCTV 설치 등 환경적 요인 개선이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일보 페이스북

한국일보 트위터

한국일보닷컴 전체기사 RSS

RSS

한국일보닷컴 모바일 앱 다운받기

앱스토어구글스토어

한국일보닷컴 서비스 전체보기

Go

뉴스 NOW

이전

  • 종합
  • 정치
  • 사회
  • 경제
  • 국제
  • 문화
  • 연예
  • 라이프
  • 스포츠

다음

머리 위 '거대 콘크리트' 대전차방호벽, 안전합니까?
文대통령 지지율, 中 굴욕외교 논란에 70% 아래로 하락
최순실재산몰수법 처리 협조하겠다는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
잇따라 석방ㆍ기각…법원, 구속 기준 엄격해졌다?
“영화 주인공 같던 난 없어”... ‘댄싱퀸’ 엄정화의 고백
사람이 휘두른 각목 맞은 ‘길고양이’… 현상금 내건 케어
손흥민, 보기 드문 헤딩골… 4경기 연속 득점

오늘의 사진

많이 본 뉴스

  • 1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