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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이젠 빽까지...” 체육 꿈나무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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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이젠 빽까지...” 체육 꿈나무의 한숨

입력
2016.11.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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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프 전지훈련비 1000만원 기본

“특기생으로 대학 보내고 싶은데

권력 동아줄까지 필요하다니…”

2. 끊이지 않는 대입 비리

교수ㆍ감독 선발권한 커 뒷돈 관행

특기자 전형, 비리의 온상 여겨져

“체육계 구성원들 자정 노력 필요”

주부 이모(43)씨의 꿈은 딸(15)을 리우올림픽 여자골프에서 금메달을 딴 박인비처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뒷바라지는 쉽지 않았다. 매달 레슨비 100만원에 매주 두 차례 하는 라운딩을 나갈 때마다 30만원이 들었다. 방학 전지훈련 비용도 1,000만원은 기본. 이것 저것 합치다 보니 한 해 6,000만원을 딸에게 투자했다. 비용 문제 만이 아니다. 오후 수업 시간을 대부분 연습장에서 보내는 탓에 교사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엄마 몫이다. 이씨는 8일 “어떻게든 아이를 특기생으로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승마를 배운 정유라의 대학 입학과정을 보면서 이젠 돈에 뒷배경까지 필요한가 싶어 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정권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가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스포츠 꿈나무와 부모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그렇잖아도 값비싼 뒷바라지 비용으로 허리가 휘는 상황에서 권력을 앞세운 최씨 모녀의 갑질을 바라보며 ‘빽 없으면 돈도 실력도 무용지물’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대입 체육특기자 전형은 운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해 별도 선발하는 제도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학교생활기록부 성적보다 입상실적이나 면접이 당락을 좌우한다. 프로에 직행하는 일부를 빼면 학벌 중시 풍토에 더해 해당 종목 명문대 입학 여부가 향후 활동과 인맥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 입시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속내다.

이들은 정씨 사태를 접하고 한 목소리로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피겨여왕 김연아처럼 재능을 타고 났어도 적지 않은 돈이 드는데 실력이 출중하지 않으면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중학생 딸에게 피겨스케이팅을 가르치는 전문직 종사자 전모(47)씨도 레슨비와 빙상장 입장료, 국내외 전지 훈련비 등을 합쳐 연 평균 5,000만원 가량을 쓴다. 전씨는 “조부모의 돈이 있어야 예체능을 한다는 말이 학부모 사이에 퍼져 있는데 ‘앞으로는 권력 동아줄이 없으면 허사’라는 얘기까지 나와 씁쓸하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으로 배경을 사려는 대입 비리도 끊이지 않는다. 교수ㆍ감독의 선발 권한이 큰 특기생 입시 특성상 해당 교수와 끈만 닿아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서울 한 고교 축구부 코치 A(36)씨는 “입시에서 감독과 친분 있는 교수들 입김이 워낙 세 감독 눈밖에 나면 이 바닥 생활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며 “괜히 학부모들이 감독에게 뒷돈을 건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체육대학에 재학 중인 박모(21)씨는 “보통 학부모가 코치나 감독을 통해 교수에게 돈을 전달하는 식인데 연세대, 고려대 등 명문대는 억 단위가 오가고 스포츠 특성화 대학도 수천만원을 호가한다”라고 귀띔했다.

대학에 들어간 체육특기생들은 특기자 전형을 마치 편법과 비리의 온상처럼 여기는 곱지 않은 시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유라씨가 고교 재학 시절 50일만 출석하고도 졸업한 의혹을 두고 ‘특기생은 다 그렇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져서다. 서울 B대 체육교육과에 다니는 최모(21)씨는 “요즘 다른 과 친구들이 고교 때 정말 학교를 안가도 됐느냐고 묻는데, 훈련 탓에 다른 학생들처럼 하루 종일 있지는 않아도 가급적 수업을 들었다”며 “특기생 전체가 불법 집단으로 매도 당한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분개했다. 서울 C체대에 재학 중인 천모(24ㆍ여)씨 역시 “친척들이 ‘수업에 빠지거나 리포트만 내도 점수를 주느냐'며 묻는 경우가 늘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정씨 입학비리의 중심에 있는 체육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대학 교수는 “체육인 양성 취지로 만들어진 특기생 제도를 악용한 최씨 모녀의 행태에 땀 흘려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받은 충격이 엄청나다”며 “알게 모르게 불법을 눈 감고, 탈법에 편승한 체육계 구성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자정 노력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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