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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대표팀 묵묵히 지탱한 다섯 명의 숨은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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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대표팀 묵묵히 지탱한 다섯 명의 숨은 영웅들

입력
2015.06.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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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의 도전은 16강에서 멈춰 섰다. 22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의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16강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랭킹 3위 프랑스에 0-3으로 졌다.

지소연의 세계무대 도전, 박은선의 화려한 복귀 등 대회 초반 스포트라이트는 몇 안 되는 스타급 선수들에게 집중됐지만 본선 일정이 이어지며 묵묵히 여자대표팀을 지탱한 숨은 공신들의 활약도 서서히 빛났다. 여자월드컵 사상 첫 승과 첫 16강을 일궈낸 숨은 영웅들의 활약상을 짚었다.

● 김정미

7경기 19실점. 여자대표팀의 절대 수문장 김정미 (31·현대제철)의 월드컵 통산 실점 기록이다. 기록만 본다면 형편없는 팀의 그저 그런 골키퍼의 기록. 하지만 '대한민국 수문장 김정미'이기에 큰 의미를 지닌다.

2003년 미국 여자 월드컵 당시 19살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김정미의 당시 기록은 3경기 11실점. 하지만 그 때의 쓰디 쓴 경험은 12년 후인 2015년 여자대표팀의 사상 첫 16강 진출의 기적을 함께 일궈낸 동력이 됐다. 특히 프랑스와의 16강전에서 보인 부상 투혼은 인상 깊었다.

전반 17분 혼전 중 박은선(29·로시얀카)의 왼쪽 팔꿈치에 오른쪽 광대뼈를 맞은 김정미는 통증을 눌러 참고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그의 오른쪽 광대뼈 부위는 순식간에 부어 오른 뒤 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90분을 모두 소화하며 대한민국의 여자월드컵 전 경기 풀 타임 출전 기록을 세운 김정미는 “4년 뒤 열릴 프랑스 여자월드컵 본선에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 권하늘

‘권중사’ 권하늘(27·부산상무)은 이번 대회를 통해 A매치 98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다. 2006년 불과 18세의 나이에 태극마크를 단 권하늘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며 A매치 100경기 출전자에게 주어지는 센추리클럽 가입을 눈앞에 뒀다. 여자 축구 A매치 수가 남자 축구에 비해 현격히 부족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세운 기록의 가치는 더 크다.

그만큼 출중했고 꾸준했다. 대표팀 감독이 5번 바뀌는 동안 그는 변함없이 대표팀의 중원 사령관을 맡아왔다. 특히 이번 대회 유일한 1승인 스페인과의 3차전에서 그의 가치는 가장 빛났다. 전반 내내 중앙 미드필더 동료인 조소현(26·현대제철)과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후반 들어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더니 경기의 흐름을 바꿔놨다. 이후 한국은 후반에만 동점·역전골을 터뜨리며 16강을 확정 지었다.

●전가을

전가을(27·현대제철)은 한국 여자 축구의 간판스타 지소연(23·첼시 레이디스)이나 박은선 등에 가려 대중에게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지만 10대 때부터 꾸준히 대표팀을 지켜온 기둥과 같은 존재다.

전가을의 별명은‘씩씩이’였다. 별명에서 느낄 수 있듯 전가을은 대표팀 막내 시절부터 왕성한 활동량을 보이며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후배들을 다독이고, 여자축구계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의젓한 중고참으로 성장했다.

대회 전 “여자축구 선수로 사는 게 외로웠다. 이번 대회에서 감동적인 경기를 펼쳐서 여자축구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한 전가을은 자신의 다짐대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를 연출했다.

바로 코스타리카와의 2차전에서 터진 역전 헤딩 골이다. 비록 경기 종료 직전 터진 상대의 동점골에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그의 골은 한국 여자축구가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증거가 된 장면이기도 했다.

●심서연

심서연(26·이천대교)의 이름 앞엔 언제나 ‘얼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그래서인지 심서연은 인터뷰 때마다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주목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꼭 전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실력으로 입증했다.

이번 대회 전 경기 풀타임을 소화한 유일한 필드플레이어인 심서연은 처음으로 출전한 여자 월드컵 무대에서 수비수로서 8실점의 쓴맛을 봤지만 끝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심서연의 활용가치는 높다. 필요시에는 주 포지션인 중앙수비수뿐만 아니라 좌-우 측면 수비까지 가담하는 등 폭넓은 활동 반경을 보인다.

심서연은 이번 대회 기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여자 홍명보’로 거듭날 재목으로 꼽힌 그의 축구 인생은 4년 뒤에 더 빛날 수 있을 거라고 축구계는 기대하고 있다.

●윤영길

‘왜 그래? 월드컵 끝났어? 스페인 이기면 조 2위다!’

1무1패 후 스페인과의 끝장 승부를 앞뒀던 지난 14일(한국시간), 여자대표팀의 숙소엔 이 같은 메시지가 적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탈락의 위기에 선 여자대표팀 선수들의 분위기가 땅으로 꺼질 듯 가라앉은 모습을 본 윤영길 멘탈 코치의 작품이었다.

윤 씨의 글은 마법처럼 현실이 됐다. 한국은 스페인을 2-1로 꺾고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다소 생소한 ‘멘탈 코치’라는 보직을 맡은 윤 씨는 자신을 “선수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정서적으로 ‘연착륙’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한국체육대학 스포츠심리학과 교수인 그는 2003년 K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한 뒤로 남자 17세 이하 대표 선수들의 상담을 맡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베트남 여자 아시안컵 때부터 여자대표팀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그는 남자 선수에 비해 정서적으로 예민한 여자대표팀 선수들에 믿음과 분발의 메시지를 적절히 내놓으며 대표팀의 안정을 도왔다.

김형준기자 mediaoby@hankookilbo.com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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