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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 도끼눈 뜬 냉혹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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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 도끼눈 뜬 냉혹사회

입력
2014.07.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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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자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우리나라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자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딸 둘을 낳아 혼자 키우고 있는 미혼모 정경진(33)씨. 스물 두 살이던 11년 전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남자친구는 연락을 끊었다. 아예 집을 옮기고, 휴대폰 번호도 바꿔버렸다. 정씨의 어머니는 “무조건 입양 보내라”고 펄펄 뛰었다. 정씨는 이모의 도움으로 혼자 첫 아이를 낳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점에선 정규직 전환을 위해 서류를 냈다가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져 오히려 해고됐다. 나중에 “걔는 더러워서 자른 거다”라는 직장 상사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는 공익 재단의 지원을 받아 창업을 하는 게 꿈이다. “애를 봐줄 데가 없어서”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입양 대신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는 순간, 미혼모는 수많은 벽과 맞닥뜨리게 된다. 사회적 편견은 당장 이들을 가족, 학교, 직장과 단절시키고, 사회와 단절된 미혼모는 곧 빈곤의 늪에 빠진다. ‘이미지 실추’라는 황당한 명목으로 미혼모에게 사직을 권고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동수출국’이란 오명(汚名)은 미혼모로 살기에 한국 사회가 얼마나 척박한지를 보여주는 동전의 뒷면이다. 1958년부터 지난해까지 해외로 입양 보낸 아이만 16만5,000명. 지난해 우리나라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자녀다. 2011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서 다수의 미혼모가 양육을 포기하고 아이를 입양시킨다”며 우려를 밝혔었다.

목경화(41)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우리는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뿐인데 미혼모라는 이유로 그동안 누렸던 것을 다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부터다. 2010년 발족한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국내 첫 미혼모 조직이다.

미혼모들은 정부의 지원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목 대표는 “본인이 직접 아이를 키울 때보다 입양, 위탁, 시설로 보낼 때 오히려 정부 지원금이 많아지는 왜곡된 구조”라며 “아이를 버리도록 권장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가 운영하는 시설에 머무르다 아들을 낳은 미혼모 A(22)씨는 고민 끝에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결심했다. 협회의 주선으로 미혼모자 거주시설로 옮겼지만 A씨는 가족과 연락이 끊겼고 외톨이가 됐다. 지금 이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 미혼모에게 우리 사회는 ‘아이를 포기하라’고 등떠밀고 있지는 않은가.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1만144명에 달한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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