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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강한 러시아‘흔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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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강한 러시아‘흔들’… 왜?

입력
2016.05.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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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지난 2000년부터 16년 이상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해 온 푸틴 정부가 흔들거리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불만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레바다첸트르’에 따르면, 지난 3월 정부 정책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신뢰율은 48%로, 지난해 같은 시기(59%)보다 11%포인트나 낮아졌다. 응답자의 77%는 ‘물가 상승’을 문제로 꼽았고, 빈곤(49%), 실업률 증가(43%) 경제위기(38%) 등 주로 경제 분야에 불만을 드러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2월 ‘러시아 정부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5%만이 긍정적으로 답변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 흔들거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조사에서 ‘푸틴이 2018년 대선에서 재집권하길 바란다’는 응답은 65%로 2월 조사 당시 지지율(74%)에 비해 9%포인트나 하락했다. 또 푸틴 대통령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혹은 ‘대체로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고 73%로, 1년 전(83%)보다 크게 줄었다. 반면, ‘대체로 신뢰한다’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14%에서 19%로 늘었다.

경제성장 주춤하자 푸틴의 강한 러시아 ‘흔들’

이 같은 배경엔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마이너스 3.7%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GDP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6년 만에 처음이다. 또 1인당 GDP도 2013년 1만4,000달러대 였던 것이 지난해 8,000달러 수준으로 거의 반토막 났다.

경제 성장률이 주춤한 가장 큰 원인은 저유가와 서방국가들의 경제제재 때문이다. 에너지 수출에 상당 부분을 의지하는 러시아 경제는 최근 석유 등 원자재 가격 폭락에 이은 매도 사태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러시아는 2014년까지 재정 수입의 절반 이상을 석유와 가스 수출에 의존했다. 하지만 배럴당 30달러대 유가가 지속되면서 올해에만 약 260억달러(약 31조 4,000억원) 가량의 예산 결손이 예상된다. 지속적 유가하락으로 러시아 루블화의 달러 대비 환율은 올해 들어 벌써 8%나 뛰어 달러당 80루블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여기에 2014년 3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가 이어지면서 러시아 경제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 모스크바 시내 건물들의 공실률은 2015년 말 현재 4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자 국민들의 실업률과 빈곤층 비율도 급상승하고 있다. 러시아 국가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실업인구는 420만여 명으로 실업률 5.8%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는 6.3%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렉 포미체프 경제개발부 차관은 “지난해 경제난 여파로 올해 기업들이 직원들을 대규모로 해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러시아 빈곤층 비율은 전체 인구의 13.4%를 기록, 9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한달 최저생계비인 9,452루블(약 16만원)이하로 생계를 유지한 러시아국민은 무려 1,920만명에 달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는 “지난해 러시아 인구의 4분의 1인 빈곤층”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근로자 실질 임금도 전년 대비 9.2%나 하락했다.

최근에는 국영기업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푸틴은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트, 아에로플로트(러시아 대표 항공사), 알로사(다이아몬드 광산), 베시네프트(석유), VTB(은행), 솝콤플로트(최대 조선 업체), 철도공사 등 7개 국영기업 사장단을 불러 민영화 논의를 시작했다. 예산 결손분을 국영기업 지분 매각으로 채운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16년 동안 철권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요 돈줄인 대형 국영기업과 기간 산업을 틀어쥐었기 때문이다. 국영 기업 지분을 포기한다는 것은 그만큼 푸틴 정부가 상당한 궁지에 몰려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경제분석학자 올레그 쿠즈민은 “종전에는 기업 효율화가 민영화의 주된 동기였지만 지금은 현금 조달 문제가 민영화를 다시 의제로 삼게 된 원인”이라며 “다만 실제 민영화가 추진될 지는 미지수”라고 분석했다.

지지율 하락은 크림 병합 이후 계속돼 온 대외 강경정책에 러시아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크림 병합 직후 민심이 하나로 뭉치면서 폭발적으로 지지율이 상승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애국 정서가 서서히 식어간다는 설명이다. 알렉세이 그라쥬탄킨 레바다 첸트르 부소장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크림병합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악화하는 민심

최근에는 “과거 공포정치로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구 소련의 독재자 이시오프 스탈린이 러시아에서 부활하고 있다”는 흉흉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영국일간 인디펜던트는 “강한 러시아를 내세운 푸틴 대통령의 경제난과 부패에 지친 러시아 국민들이 염증을 느낀 나머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실망과 피로감 때문에 러시아 국민들이 “그나마 과거가 나았다”며 구소련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는 것이다.

레바다첸트르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0%가 스탈린 통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4년 전에 비해 무려 13% 포인트 급증한 수치다. 또 러시아 곳곳에는 스탈린 흉상이 설립되는가 하면, 선물 가게에는 스탈린 관련 기념품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경제난에 몰린 러시아인들이 은행과 그렘린궁 앞에서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수년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시위자들 중 대부분은 전문직 종사자, 트럭 운전기사, 퇴직자 등 이전에는 모스크바의 살인적인 집값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들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과거에는 중상류 층에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에 푸틴 대통령의 철권 정치를 묵인했던 이들이 급등한 도로 통행료(운전 기사), 감소한 연금 혜택(퇴직자) 등을 참지 못하고 결국 거리로 몰려 나온 것이다. WP는 “시위대는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하는데 더 이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 놀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푸틴 정부가 연금ㆍ예산운용의 분권화 확대, 인프라 예산 확대 등 고통이 수반되는 구조개혁에 주저하는 것은 오는 2018년 대선 및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형 선거를 앞두고 민심 이반을 초래할 수 있는 구조조정 활동에 선뜻 나서기 부담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알렉세이 쿠드린 전 러시아재무장관은 저유가 사태가 러시아 GDP 둔화의 주요인이라고 밝히고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연금과 예산제도 조정 등 구조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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