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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국제관계에서의 ‘전략적 패러독스’

입력
2015.07.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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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관계에서 국가는 ‘전략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전략적 상황이란, 국가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취하는 행동이 반드시 애초에 의도한 결과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최종적인 결과는 상대국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흔히 전략적 상황에서는 ‘전략적 패러독스(역설)’가 작용한다. 첫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우리 측이 순전히 방어적 목적으로 군비를 증강해도 그것이 상대방의 대응적 군비증강을 초래한다면 애초의 노력은 ‘군비경쟁의 악순환’으로 인해 헛수고가 되고 마는 ‘안보딜레마’가 그 대표적 예다.

이러한 개념들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미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흔히 사용되는 경구 중에도 ‘전략적 패러독스’ 관계를 암시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스스로를 높이려는 자는 낮아지고, 스스로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고,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必生卽死, 必死卽生) ▦배수진(背水陣)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썩어야 새 생명을 얻는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등이 그것이다.

스스로 남과 구분된다고 생각하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주변사람들의 신망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겸양지덕을 얘기한다. 이순신 장군은 끝내 본인은 전사하였으나, 솔선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으로써 부하들을 감동시켜 결국 압도적 숫자와 화력의 왜적을 패퇴시켰다. 전력이 약한 측의 장군은 흔히 일부러 퇴로를 차단하는 배수진을 침으로써 모두 죽기 살기로 싸우도록 하여 승리를 쟁취하기도 한다. 지렁이, 쥐처럼 약한 것도 죽음의 순간까지 몰리면 꿈틀하거나, 고양이를 문다(실제로 고양이를 무는 쥐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말을 따르면 결국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지만, 악을 선으로 대해 기존 상호관계의 패턴이 바뀌면 ‘윈-윈’상황으로 변화될 수 있다. 씨앗이 죽어야 싹이 나듯이, 근본적 변화는 미래를 멀리 내다보며 양보, 희생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가능해진다. 겉으로는 지는 것 같은 행동이 결국은 함께 승리하는 길을 연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은 모두 홀로가 아닌 내가 상대와 공존하는 상황에서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흔히 내가 ‘의도한 결과’, ‘직접적 효과’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치 않은 결과’, ‘간접적 효과’도 발생하는 ‘전략적 패러독스’ 현상이 일반적임을 말해준다. 정부가 대외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강경론자들이 흔히 언급하는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경구는 진리가 아니라, 국가간 관계의 한 측면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 준비도 적정수준이라면 억지(抑止)효과가 있으나, 지나치면 전쟁 자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전쟁 부재를 뜻하는 ‘소극적 평화’뿐만이 아니라, 요한 갈퉁이 얘기한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적극적 평화’(인권, 복지 등)의 실현을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

지도자가 한 가지 전략만 극단적으로 추진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듯이, 단선적 논리를 뛰어넘어 역설적 논리까지 고려할 능력이 있는 지도자를 만나야만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다. 장기나 바둑으로 치면 한, 두 수 밖에 볼 수 없는 자가 고수를 당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날처럼 대부분의 국가가 막대한 파괴력을 손에 쥐고 있는 상태에서 진정한 고수는 적국을 패배시켜 정복하려는 지도자가 아니라, 적국과도 궁극적으로 상생(相生), 공동안보(common security)를 추구하는 지도자인 것이다.

윤태룡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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