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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 혁오를 '무한도전'에 빼앗긴 느낌?

입력
2015.07.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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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어느 정도 화제성은 있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차트를 쥐락펴락하고, 가요계의 ‘대세’로까지 떠오를 줄이야. 그런데 어떤 팬들은 이게 영 불만인가 보다. “뭔가를 뺏긴 느낌”이라는 독후감이 줄을 잇는다. 하기야, 그들의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무엇보다 그들은 홍대 앞 라이브와 입소문을 통해 관객들을 모으고, 네임 밸류를 올려 방송에까지 진출한 케이스다. “먹이고 보살펴서 키워놨는데, 이제 집을 떠난다니” 싶은 어미새의 심정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어느새 그들, 아니 혁오는 하나의 현상으로 떠올랐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정형돈과 함께 할 그들의 무한도전 가요제 무대는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초기 상태다. 그럼에도 차트 1위는 기본이요, 탑 10 안에 여러 곡을 동시다발적으로 올려놓고 있다. 과연, 여타 뮤지션들에게 무한도전은 ‘넘사벽’인 것일까. 가요제가 다 방송되고 난 뒤의 후폭풍이 과연 어떨지, 그림조차 그려지질 않는다. 차트 줄세우기 정도는 기본 중에 기본일 거라는 점 외에는.

밴드 혁오. 두루두루AMC 제공
밴드 혁오. 두루두루AMC 제공

무한도전 출연 전에 혁오는 홍대 신을 씹어 먹으며 정점으로 올라서기 바로 직전에 있었다. 나는 사실 그들의 출연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믿기가 힘들었다. ‘방송 가능한 타입의 인터뷰이‘들이 아닌 걸 풍문으로 들었던 까닭이다. 이건 완벽한 내 오판이었다. 라디오는 몰라도 텔레비전은 일단 ’보인다’는 장점이 있고, 여러 편집 기술들을 활용해 방송을 늘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한 것이다. 과연, 무한도전에서 혁오의 최초 인터뷰는 심지어 재밌기까지 했다. 실제 녹화에서는 어떠했을지 알 수 없지만.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는 속칭 말하는 무한도전빠다. 무한도전을 하나도 안 빼놓고 다 봤고, 심지어 이 프로에 잠시나마 출연하기도 했다. (훗… 궁금해 할 사람들을 위해 ▶ 동영상 보기) 어디 이뿐인가. 그들의 프로 의식에는 늘 경탄을 해왔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겸손함을 잊지 않는 자세에는 깊은 감동을 받기도 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쓰는데, 정형돈은 진짜 좋은 사람이다. 내가 보증한다.

질문 던지는 걸 까먹었다. 다시 던져본다. “이런 구조가 과연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먼저 인디에서 출발해 ‘스타’의 지위에 오른 뮤지션/밴드들의 이름을 나열해본다. 장기하와 얼굴들, 10센치, 국카스텐 등이 뇌리에 스칠 것이다. 모두 ‘나는 가수다’ 아니면 ‘무한도전’을 통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획득한 이름들이다. 물론 이들도 혁오와 마찬가지로 ‘이미 뜰 준비가 다 되어있는 상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지 않은 콘서트장이 적지 않은 관객들로 끓어 넘쳤고, 앨범은 품절이 되어 재발매한 경우들도 심심찮았다. 그러나 예능이라는 매직 포털을 통과하기 이전과 이후, 스케일부터가 달라진 그들의 인지도를 또한 간과할 수 없다고 본다.

이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고, 그렇게 되어야 할 당위도 지금으로선 마땅히 찾기가 어렵다. 도리어 중요한 건, 홍대 앞 어느 클럽에서 훗날을 위해 실력을 갈고 닦고 있을 수많은 밴드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10센치, 그리고 지금의 혁오를 향한 마니아들의 뜨거웠던 관심처럼 말이다.

음악 역사를 살펴봐도 언제나 탁월한 고성능 안테나의 역할을 해주는 건, 바로 이 ‘마니아’라는 집단이었다. “혁오를 마치 뺏긴 거 같다”라는 그들의 불평이 내게는 도리어 사랑스러워 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이걸 두고 ‘힙부심 쩐다’라며 비판하지는 말자. 이렇게 생각하면 좀 어떤가 말이다. 피 같은 자기 돈 써서 음원이나 씨디 구입해 듣고 열심히 공연 따라 다니면서 라이브도 봤으니,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다.

무한도전으로 인해 잠시나마 이미 현재진행형인 출연진의 차트 폭격이 가속화 될 것은 빤한 결과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할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텔레비전은 화려한 아이돌들만 메뉴에 올릴 것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잠깐의 관심은 시들해질 거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똑같은 과정이 데자부처럼 되풀이 되겠지.

이렇게 무한궤도처럼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음악을 듣고 공연장을 찾아 다닌다는, 기본을 잃지 않는 자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일단 지금 내 앞에는 새로 나온 신보들이 수북이 쌓여져 있다. 당장 내일까지 들어봐야 할 앨범만 열 장 이상. 하나도 빼놓지 않고 열과 성을 다해 들어볼 생각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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