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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댄싱퀸이 납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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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쑤~ 댄싱퀸이 납신다

입력
2015.06.0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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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원 무용단원들 배틀전

중부-남도 살풀이춤 대결 등

태평무 배틀에서 절정… 곳곳 탄성

남녀노소 관람… 흥행·예술성 갖춰

국립국악원의 ‘여무-배틀전 류’를 관람한 130여명은 관객평가단이 공연 후 심사 결과를 모으고 있다. 그 사이 무대에서는 권덕연이 설장구춤을 선보였다. 장구 치는 솜씨와 요염한 눈빛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의 ‘여무-배틀전 류’를 관람한 130여명은 관객평가단이 공연 후 심사 결과를 모으고 있다. 그 사이 무대에서는 권덕연이 설장구춤을 선보였다. 장구 치는 솜씨와 요염한 눈빛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국립국악원 제공

3일 저녁 서초동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수십 년간 춤 좀 췄다는 무용수들 손끝이 하나같이 파르르 떨린다. 어떤 무용수는 발끝도 떤다. 눈에는 비장미가 흐르는데, 입술 꼬리는 한껏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모른다. 느린 가락으로 시작한 춤은 자진모리 장단으로 바뀌면서 활발해진다. 숨죽이고 보던 객석도 들썩이기 시작한다. “얼쑤!” “잘한다!” “예쁘다!” 탄성이 이어진다.

흰색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고 무대에 오른 국립국악원 무용단원 백진희(43)씨는 한(恨)과 살(煞)을 풀어내기 위해 낮은 시선으로 긴 수건을 던지고 어른다. 경기 중부 지역 춤사위를 조흥동(74)이 집대성한 중부 살풀이춤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김진정(39). 호화로운 수건 사위와 보다 세밀한 발놀림의 남도 살풀이로 무대를 누빈다.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의 개성이 두드러진 호남 살풀이춤이다.

두 사람의 대결이 끝나자 국악평론가 윤중강, 탤런트 양희경의 춤 중계(?)가 이어진다. “사람 몸이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요? 저렇게 발을 놀리면 금방 쓰러져버릴 거 같은데 말이죠.” “호남 살풀이 춤은 교방춤(교방에서 추던 춤을 통칭)의 특징이 살아있어 교태미가 중시되고 기교가 다양합니다.”

전통 무용의 댄싱퀸을 뽑는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국립국악원이 매주 펼치는 수요춤전을, 전통춤 유파별로 선보인 후 관객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바꾼 ‘여무-배틀전 류’(女舞-Battle展 ‘流’)를 선보인 것. 살풀이춤, 태평무, 산조춤 독무에 각 유파의 30, 40대 여성 춤꾼이 대결을 펼쳤다. 한명옥 무용단 예술감독은 “단순한 나열식 무용공연을 벗어나 대결 구도를 통해 전통춤을 비교해볼 수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행처럼 번지는 오디션 프로그램 형식을 따와 전통 무용에 새 바람을 불어 넣겠다는 취지다. 이날 공연은 풍류사랑방 130석 매진을 기록, 흥행에 성공했다.

이날 가장 화려한 공연은 ‘왕실 번영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왕과 왕비가 직접 춘다’는 내용을 담은 창작춤, 태평무 배틀이었다. 민속무용가 한성준(1874∼1942)이 무대 공연으로 완성한 태평무는 남자가 추면 왕의 옷을, 여자가 추면 왕비의 옷을 입는다. 경기 무악(巫樂)에서 유래한 토속적인 가락과 32박 도당굿 장단에 맞춰 추기 때문에 가락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야 제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춤이다.

전통춤 배틀에서 1등을 거머쥔 30대 단원 이지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여 댄싱퀸에 올랐다. 국립국악원 제공
전통춤 배틀에서 1등을 거머쥔 30대 단원 이지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여 댄싱퀸에 올랐다. 국립국악원 제공

이지연(42)은 한성준의 손녀, 한영숙류의 절도 있는 춤사위를 선보였다. 손목을 꺾고 돌리는 동작으로 손끝 표정이 살아났다. 치마를 살짝 올려 버선발을 선보이며 아이가 걸음마를 떼듯 아장아장 걷다, 발 빠르게 제자리에서 돌며 화려한 기품을 한껏 뽐냈다. 한성준의 제자, 강선영류의 춤을 선보인 이지은(37)은 활옷과 한삼을 끼고 춤을 추면서도 어깨의 좌우세가 조화를 이뤘다. 박자에 맞춰 들썩이는 어깨춤이 태엽감은 인형을 연상시켰다.

19세기 등장한 산조 가락에 맞춰 각각 이길주류 호남산조춤과 김백봉의 산조춤 청명심수를 선보이 장민하(45), 김태은(39)의 대결까지 끝나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관객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권덕연(24)과 이하경(28)이 농악 판굿의 마지막 놀이인 ‘설장구춤’을 선보이며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20대 후배 단원들이 준비한 특별공연이다.

“최종 승자는…! 60초 후에 발표하겠습니다.” 위트 섞인 진행으로 발표된 댄싱퀸은 총 전체 투표수 117표 중 36표를 받은 이지은이었다. 그는 부상으로 포상 휴가와 금일봉을 받았다. 10대부터 60~70대 노년까지 관람한 이번 공연은 흥행성과 예술성을 둘 다 잡았다는 평이다. 관객평가단에 참가한 이주승(51)씨는 “한국춤을 이렇게 가까운 무대에서 손끝 발끝 얼굴 표정까지 다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배틀이란 방식이 비정하지만, 긴장감을 갖고 최고의 춤을 선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은 “올해 11월 배틀 형식의 남무전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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