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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데드덕(dead duck)

입력
2016.11.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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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포화지방산을 많이 함유한 오리가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해서 최근 인기를 끌지만, 우리 조상들에게는 별로 환영을 못 받았던 모양이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거나 ‘오리고기를 잘못 먹으면 손가락이 붙는다’는 옛말을 보면 그렇다. 조선 시대 가정 살림에 관한 내용을 엮은 책인 ‘규합총서’에도 “오리고기와 알을 먹으면 아기를 거꾸로 낳고…” 라는 내용이 나온다. 여전히 닭은 먹어도 오리는 안 먹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아마도 닭고기보다 육질이 질기고 비린내가 좀 나는 것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 서양에서는 오리에 얽힌 정치 용어들이 많다. 우리 정치에서도 흔히 등장했던 레임덕(lame duck)은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을 뜻한다. 레임덕은 영국 증권시장에서 미수금을 갚지 못하는 투자자를 일컬었으나, 1860년대부터는 정치권에 등장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레임덕 단계를 넘어 브로큰덕(broken duck)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죽은 오리에는 밀가루를 낭비하지 말라”는 속담에서 나온 데드덕(dead duck)은 정치 생명이 끝난 사람, 더 이상 가망이 없는 인사, 실패할 것이 분명한 정책 등을 말한다.

▦ 데드덕만큼이나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이 없을 듯하다. 올해 4ㆍ13총선 직후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새누리당 패배로 박근혜 대통령은 벌써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 신세가 됐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때는 좀 이른 감이 있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은 완전히 데드덕으로 전락했다.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5%를 기록하는 등 사실상 통치 불능 수준으로 떨어졌다. 거리에 나선 국민도 두 차례나 이뤄진 대통령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을 ‘식물 대통령’이라며 하야나 탄핵을 주장한다. 식물 대통령은 데드덕을 의미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2선 후퇴’마저 거부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우리 역대 대통령은 모두 끝이 좋지 않았다. 박정희는 시해됐고, 전두환 노태우는 구속됐다.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은 측근이 구속됐고, 노무현은 자살했다. 또 대부분이 ‘4년 차 징크스’에 시달렸다. 단임 대통령제의 저주가 아닐까 싶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말로가 뻔하다는 게 문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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