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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체력은 가차없다… 포청천 향한 '지옥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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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체력은 가차없다… 포청천 향한 '지옥 레이스'

입력
2015.09.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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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심판? 왜 하려고 하는데?”

축구심판 자격 취득 과정 시작을 며칠 앞둔 2006년 7월. 자격 코스 시작을 앞두고 만난 친구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진 않는 도전인데다, 자격증만으로 치면 이른바 ‘스펙’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자격이었기에 친구의 이 같은 의문은 어쩌면 당연했다.

첫 회에서 쓴 도전의 취지(▶기사 바로가기)를 설명하자 든든한 우군이 됐다. “심판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더라도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던 친구의 격려를 안고 ‘2006 서울지역 하계 신인심판 강습회’에 임했다.

폭염의 절정이었던 7월 31일부터 8월 4일까지 총 5일간의 일정으로 강습회가 열린 서울 강동구의 한 고등학교 강당엔 날씨만큼 뜨거운 열기가 가득했다. 약 200여명의 지원자들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잡힌 빡빡한 교육 일정을 소화했다.

대한축구협회에서 발행한 경기규칙서와 질의응답서를 교과서 삼아 이론 교육이 진행됐고, 각 규정에 해당되는 영상으로 이해를 도왔다. 하루 수십 가지의 영상을 돌려보며 옳은 판정인지, 오심이라면 왜 오심인지에 대한 근거가 제시됐다.

강사로 나섰던 김인수씨는 영상 교육 내내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정답은 있다”고 강조했다. 1863년 영국에서 현대 축구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수도 없이 많은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기에 모든 상황에 대한 판정 근거는 마련돼 있었다. 다만 심판이 판정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하거나 순간적인 판단이 이뤄지지 않아 오심이 생길 뿐이었다.

규정은 평소 막연하게 느꼈던 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세밀했다. 축구경기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판정 근거가 명확했다. 어떠한 순간에라도 ‘애매한 판정’이란 무책임한 말을 갖다 붙일 수 없었다. 정심(正審)과 오심(誤審)만 있을 뿐이다.

가르치는 이, 배우는 이 모두 열정적이었던 4일간의 이론 및 실기 교육 뒤에는 심판 자격 취득 여부를 가르는 테스트가 이뤄졌다. 그간 배웠던 내용을 토대로 필기시험을 치렀고 다행히도 기자를 포함한 다수의 지원자들은 필기 시험을 통과했다.

관건은 강습회 마지막 날 잠실종합운동장 보조구장에서 예정된 체력테스트. 현재는 기준이 달라졌지만(하단 참고) 당시 체력테스트는 단거리 스프린트(40m를 6.4초안에 통과·6회 반복)와 장거리 달리기(2,700m를 12분 안에 통과·단 달리기 도중 걷거나 앉으면 실격)를 모두 통과해야 합격이었다. 당초 합격 욕심은 접고 시작한 과정이었지만 이 마지막 고비를 넘으면 새로운 경험의 기회가 생길 거란 기대감이 묘한 투지를 불러왔다.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에 세워 놓은 센서를 통해 오차 없이 기록을 측정하는 스프린트 테스트. 40m 구간을 6번 통과해야 한다. 구간별 제한 시간은 6.4초. 한 번 실패시 경고가 주어지고, 두번째 실패시 가차없이 탈락이다. 사진은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2009년 상반기 체력테스트 장면.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에 세워 놓은 센서를 통해 오차 없이 기록을 측정하는 스프린트 테스트. 40m 구간을 6번 통과해야 한다. 구간별 제한 시간은 6.4초. 한 번 실패시 경고가 주어지고, 두번째 실패시 가차없이 탈락이다. 사진은 목동운동장에서 열린 2009년 상반기 체력테스트 장면.

스프린트를 통과 한 뒤 이어진 2,700m 달리기는 지옥의 레이스였다. 8명씩 조를 짜 400m트랙을 약 7바퀴 돌아야 하는데, 숨소리는 이미 두 바퀴째부터 가빠졌다. 달리는 건 발인데 머리와 아랫배가 터질 것처럼 아팠던 고통은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턱걸이로 합격한 뒤 곧 죽을 사람마냥 트랙에 뻗었다.

같은 조 8명 중 합격자는 기자를 포함해 4명. 이날의 전체 합격률도 약 50%였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세 명의 동기와 둘러 앉아 나눈 몇 마디에서 이들의 도전이 무척이나 간절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친구의 질문이 떠올랐다. 이들은 왜 축구심판에 도전했을까. 통성명도 못한 형들에게 흘리듯 질문을 던졌다. “형들은 왜 이거 했어요?”

두 명의 형에게서 답이 왔고, 나머지 한 명은 웃어넘겼다. 한 형은 고교 때까지 축구선수로 뛰다 선수 생활을 접은 게 아쉬워서, 또 다른 형은 사업 시작 후 나빠진 건강 회복을 위해 운동을 해오다 심판 자격 과정을 알게 돼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픔을 되레 동력 삼은 이들이었다.

이제 스스로에게 어떤 심판이 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차례였다. 심판이 될 거란 예상도 못했고, 이를 업으로 삼을 생각은 더욱 없었다. 교육 과정을 거쳐가며 심판의 길이 얼마나 괴로운 지를 알았기에 선뜻 거창한 답도 내놓기 힘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운동장을 뒤로 하고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 당장의 실현 가능한 목표를 찾았다.

“심판이란 이름에 먹칠이나 하지 말자”

■ 축구심판에 도전하고 싶다면?

현재의 시험 과정은 기자가 합격한 2006년의 기준과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3급이 가장 낮은 급수였지만 현재는 입문 시 4급부터 시작한다. 지원 자격과 절차는 까다롭지 않다. 만 15세 이상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며, 대한축구협회 joinKFA 홈페이지(http://joinkfa.com/referee)를 통해 지원 가능하다. 대체로 이론 교육 마지막 날 실시되는 필기시험은 25문항 중 60점 이상이 합격이며, 필기시험을 통과해야만 체력테스트에 도전할 수 있다.

체력테스트는 스프린트와 인터벌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야 합격이다. 40m 달리기를 6번 반복 해야 하는 스프린트 제한시간은 남녀 각각 6.4초, 6.8초다. 인터벌테스트는 150m 달리기(남성 30초·여성 35초 이내)와 50m 걷기(남성 40초·여성 45초 이내)를 전 구간을 제한시간 내에 10회 반복해야만 통과할 수 있다. 협회 측은 “4급 시험도 체력테스트 탈락자가 많은 편”이라며 “테스트 전 체력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형준기자 mediaboy@hankookilbo.com·대한축구협회 3급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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