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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샌드백 취급에 경고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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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샌드백 취급에 경고하고 싶었다"

입력
2016.06.1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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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래퍼 덤파운디드(박성만·30)는 아시아계 차별을 꼬집은 신곡 '세이프'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인종차별 문제를 꾸준히 노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덤파운디드 제공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래퍼 덤파운디드(박성만·30)는 아시아계 차별을 꼬집은 신곡 '세이프'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인종차별 문제를 꾸준히 노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덤파운디드 제공

한국계 래퍼 덤파운디드(박성만·30)는 지난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집에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오스카상)을 보다 화가 치밀었다. 참가자들이 아시아계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 내서다. 특히 시상식 사회자인 배우 크리스 록이 수상작 투표를 관리하는 기업 직원을 소개한다며 무대에 오른 아시아계 어린이 3명을 두고 “가장 헌신적이고 근면한 대표”라고 말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시아계 아동 노동 착취를 비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평소 좋아했던 배우에게서 아시아계에 대한 편견을 확인해 충격은 더욱 컸다. 코미디언 사샤 배런 코언이 “노랗고 거시기가 정말 작은 사람들을 위한 오스카는 왜 없지”라고 한 말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시상식 내내 아시아계가 놀림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덤파운디드는 미국 내 아시아계 차별을 꼬집는 곡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노랫말은 ‘백인들만의 잔치’란 비판을 받은 오스카상에 대한 풍자부터 시작했다. ‘오스카상을 봤어. 노란 피부를 가진 건 동상뿐이더라’. 신곡 ‘세이프’에서 미국 대중문화 속 아시아계 차별을 조목조목 꼬집어 미국 언론을 비롯해 네티즌의 주목을 받은 덤파운디드가 들려준 곡 제작 뒷얘기다. 덤파운디드를 최근 이메일로 만났다. 국내 언론과 진행한 첫 인터뷰다.

래퍼 덤파운디드는 뮤직비디오 '세이프'에서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 속 백인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을 지우고 자신의 얼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넣었다.
래퍼 덤파운디드는 뮤직비디오 '세이프'에서 영화 '아이언맨' 시리즈 속 백인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얼굴을 지우고 자신의 얼굴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넣었다.

‘세이프’가 화제가 된 건 재기 발랄한 뮤직비디오의 덕이 컸다. 덤파운디드는 뮤직비디오에서 할리우드 유명 영화 명장면 속 주인공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로 바꿔 웃음을 줬다. ‘타이타닉’의 잭 도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나 ‘캐리비안 해적’ 속 잭 스패로우 선장(조니 뎁)으로 연달아 나와 랩을 하는 식이다. 최근 미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에 대한 풍자라 보는 이들의 공감대를 키웠다. 화이트 워싱은 원작 설정을 무시하고 동양인 역할을 무조건 백인 배우로 바꾸는 걸 뜻한다. 배역이나 연기력에 상관 없이 아시아계란 이유로 배우들이 작품 출연에 불이익을 당하는 할리우드 내 인종차별 문제를, 자신을 영화 속 주연으로 내세워 꼬집은 것이다.

덤파운디드는 “시나리오엔 동양인으로 나온 역인데 정작 영화 속에선 백인 배우로 나오는 작품들이 여럿 개봉을 앞두고 있다”며 “그걸 문제 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지적처럼 10월 개봉을 앞둔 ‘닥터 스트레인지’에선 티베트인 신비주의자로 백인 배우 틸다 스윈턴이 나오고, 내년 개봉 예정인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셸’에선 일본인 구사나기 모토코 소령 역에 역시 백인 배우인 스칼릿 조핸슨이 캐스팅됐다. 덤파운디드는 “어려서 TV나 영화에서 우러러 볼 수 있는 아시아계 영웅 캐릭터가 없었고, 아무도 이 모순을 깨려 나서지 않아 실망스러웠다”며 “뮤직비디오가 화이트 워싱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더 많은 의견을 나누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말을 보탰다. 지난달 26일 유튜브에 공개된 ‘세이프’ 뮤직비디오는 14일 오후 3시께 약 58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 네티즌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덤파운디드도 “미국에서 살며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아시아계 차별 문제를 꼬집은 곡의 제목을 안전하다는 뜻의 ‘세이프’로 지은 건 반어적 표현을 위해서다. 미국 사회가 아시아계를 잘못 건드려도 “안전하다”고 느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덤파운디드는 “미국에서 아시아계는 놀리기 쉽고, 샌드백처럼 아무렇지 않게 두들겨도 되는 소수 민족”이라며 “하지만 이 노래를 통해 더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그는 ‘세이프’에서 ‘총을 쏘고 장전해. 아시아계가 이럴 줄 몰랐겠지’라고 백인일색의 미국 대중문화를 도발하며 ‘내가 자릴 만들어야지’라고 당차게 노래를 끝맺는다. “옳은 말을 하려거든, 크게 말하자”란 지론을 품고 산다는 래퍼다운 곡이다.

래퍼 덤파운디드가 뮤직비디오 '세이프'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패러디한 장면.
래퍼 덤파운디드가 뮤직비디오 '세이프'에서 영화 '타이타닉'을 패러디한 장면.

덤파운디드는 국내 힙합신에선 제법 익숙한 음악인이다. 그는 힙합그룹 에픽하이가 지난 2009년 낸 6집 ‘이’(e)의 수록곡 ‘메이즈’에 랩 피처링을 하며 국내 음악인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박재범이 보이그룹 2PM을 떠나 홀로서기를 준비할 때 그와 함께 ‘클라우즈’란 곡을 내 주목 받기도 했다. 곧 한국에서도 그의 신곡을 들을 수 있다.

“7월엔 미국에서 영어 앨범이 나와요. 이후 여러 한국 음악인들과 작업한 곡들을 모아 한국에도 앨범을 낼 겁니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며 연예 활동을 하는 게 힘들지만,인종 차별 문제도 꾸준히 노래할 거고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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