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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리처방과 권력

입력
2016.11.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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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안갯속이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어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숱한 의혹 중에는 최순실과 대통령의 대리처방에 관한 것도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이렇다. 최순실은 2010년 8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약 6년간 차움병원을 총 507회 방문했고, 그중 주사제를 293회 처방받았다. 이 기록에는 ‘박대표, 대표님, 안가, VIP, 청’등의, 누가 봐도 현재 대통령인 사람을 칭하는 단어가 29회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최순실의 처방 내역에는 한 명에게 투여할 약물 용량의 2, 3배가 처방된 적이 21회가 있고, 남은 주사는 외부로 유출되어서 누군가에게 사용되었다. 증언 중에는 이런 말도 있다. ‘간호장교가 채취한 대통령의 혈액을 최순실의 이름으로 검사함.’ ‘대통령이 진료를 보고 주사를 맞고 갔으며 최순실의 이름으로 대신 기록함.’

전부 불법이다. 의료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환자를 직접 진찰하고 처방전을 작성해야 하고, 진료 기록부에 환자의 이름 등을 기재해야 하며, 이를 거짓으로 작성할 수 없다. 위반한 의료인은 3년 이하의 징역, 1,0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자격 정지 1개월을 받게 된다. 강요가 있었더라도 이를 위반하면 처벌은 의사만 받는다. 최순실과 대통령은 이 의혹에서 법적으로는 죄가 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 진료실에 있었던 의사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최순실 같은 실세나 대통령을 사적으로 진료할 정도의 의사라면, 이 사람들이 어떤 위치에 있고 무슨 요구를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법을 어겼을 때 처벌하는 것은 결국 권력이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 일개 의사에게 와서 위법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더라도 자신이 구제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반대로 의사의 신념을 지키고자 요구를 거절했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권력에 대한 저항, 이어진 보복, 생각하기도 싫다. 나 같아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처벌받게 된 일개 의사의 억울함을 읍소하는 것이 아니다. 그 진료실에선 거꾸로였지만, 기본적으로 의사는 진료실에 있으면 일종의 권력을 지닌다. 그리고 정의를 바탕으로 제정된 법은 처방권, 말하자면 ‘권력’을 지닌 의사만을 처벌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 권력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하고, 책임도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져야 한다는 사회적인 함의다. 이러한 처벌 방식은 사회적인 형평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으며, 합당하고 정의롭게 사회를 이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한 개의 법에서 비추어본 사회적인 함의, 지금 모든 국민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시점에 있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숱한 의혹들에서 권력을 지니고 남용한 사람들은 책임과 처벌에서 전부 피해 가고 있다. 일반인으로 어처구니없이 큰 권력을 휘두른 최순실부터, 그 권력을 마음껏 부리게 한 대통령. 이 사회를 지탱해온 정의상 그들은 모든 처벌을 떠안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최순실은 자신이 일반인이었다는 변명으로 ‘뇌물죄’나 ‘공권력 남용’의 혐의에서 벗어나 있고, 대통령은 ‘면책 특권’과 ‘혐의 입증의 어려움’으로 이 처벌에서 벗어나 있다.

법은 정의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적인 정의 중에서도 반드시 규정하고 처벌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명문화한 게 법이다. 하지만 이 시국이 올바른 정의로 보이는가. 이들의 태도는 사회 지도층이 응당 지녀야 할 윤리나 정의에서 완벽히 멀어져 있다. 법은 권력을 올바르게 쓰지 못한 사람을 처벌하고, 그전에 권력자들은 마땅한 책임감으로 과오를 통감하며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거꾸로 권력자들이 교묘히 법망을 이용해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 우리는 이 통탄할 시국에서 잃어버린 정의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뛰어나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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