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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판사들 개혁요구 압박했다면서 조직 개입 아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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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판사들 개혁요구 압박했다면서 조직 개입 아니라니

입력
2017.04.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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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부당하게 견제하려 했다는 의혹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18일 이런 내용의 사법개혁 학술행사 축소 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관여나 ‘부당 지시’를 거부한 법관 인사,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 등 의혹 대부분을 부인해 부실 조사 논란이 일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사태의 발단이 된 판사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지시 당사자는 대법원 고위간부인 이모 상임위원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의혹 제기 당시 지목된 법원행정처 처장이 아니라는 것을 근거로 법원행정처가 조직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조사위의 결론이다. 그러나 이 상임위원은 행정처 차장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학술대회 견제 필요성을 보고한 뒤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 법원행정처 회의에서 연구회 학술행사 연기와 축소 압박이 논의되고 시행됐는데도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연구회가 전국의 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하자 법원행정처가 중복가입학회를 자동 탈퇴시키겠다고 공지한 것만 봐도 조직적 개입 여지가 충분하다. 특정인에 책임을 떠넘기는 안이한 자세로는 법원의 독립과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목소리를 올바로 담아낼 수 없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판사 블랙리스트’존재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조사 결과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목격됐다는 일종의 판사 사찰 파일은 목격자가 연구회와 학술대회 구성원과 발표자 등을 기재한 보고서를 오인한 것이라는 게 조사위의 설명이다. 하지만 조사위는 블랙리스트 파일이 보관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컴퓨터 조사는 법원행정처 거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동안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게시판 글이나 판결 등을 분석해 법관 인사나 연수자 선발 때 활용한다는 설이 무성했다. 이번 조사는 이런 근본적 의혹까지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판사 개인이 독립적 사법기관인 법원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이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진상조사위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개적이고 투명한 의겸 수렴을 통한 사법제도 관련 논의의 공론화를 제안했다. 애초에 파문이 커진 것은 인사권을 무기로 법관들의 개혁 요구를 제약하려는 구태에서 비롯됐다. 안 그래도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33위 수준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민주적 운영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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