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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마을주민 56명 죽어나간 ‘우순경 사건’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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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마을주민 56명 죽어나간 ‘우순경 사건’ 재구성

입력
2016.04.2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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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개와 늑대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제공
김경욱 ‘개와 늑대의 시간’ 문학과지성사 제공

개와 늑대의 시간

김경욱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ㆍ332쪽ㆍ1만3,000원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 사건이라고는 누렁이가 농약 잘못 먹고 죽은 것 외엔 없는 평화로운 마을에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외지에서 온 황순경이 카빈 소총 두 자루를 매고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쏘아 죽이기 시작한 것. “다 직이삔다.” 달리는 노루 귀를 맞혔다는 허풍은 현실이 되고, 그날 밤 주민 56명이 카빈 소총 앞에 쓰러진다.

김경욱 장편소설 ‘개와 늑대의 시간’은 1982년 4월 22일 저녁부터 23일 새벽까지 한 마을에서 일어난 참사를 피해자의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통상 피해자의 시각을 빌어오는 목적은 개인사의 세목을 나열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남 일 같지 않게’ 느끼게 해 살인의 극악무도함을 강조하고 재발 방지를 호소하는 것이지만, 이 소설은 약간 다르다.

“순경이 사람 잡는다”는 첫 신고에 군청 직원들의 대응을 보자. 군청 농촌지도과 영농지도계 서기 손반기가 재무과 윤 서기로부터 신고 사실을 전해 들은 뒤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면피다. 신고자가 누구인지 확인했다는 증거를 남기고 재빨리 윗선에 보고하는 것. 신고자가 친척일 거란 확신도, 목숨 걸고 책임을 회피하는 ‘조직 마인드’ 앞에선 섣부른 추측에 불과하다.

다른 피해자들의 삶에서도 근현대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가 점점이 묻어난다. 황순경의 동거녀 손미자는 “아들 잡아 먹는 딸년”이란 누명을 쓰고 친척집에 입양 당하고, 월남전에 참전했던 구멍가게 최씨는 다리 한쪽을 잃은 채 현실과 전쟁터를 오락가락하며, 동네 수재 박만길은 뒤늦게 안 광주 민주화 항쟁에 학업을 포기하고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에 동참한다. 야만의 시대를 거친 이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위트 넘치는 문장 속에서 만화경처럼 돌아가고 독자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 지 내내 고민하게 된다.

1982년이란 말에서 짐작한 이가 있듯 소설은 일명 ‘우순경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애도 곁에 유머를 두는 걸 불쾌해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답하는 듯 하다. 때론 유머가 가장 좋은 애도라고.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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