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회견 “패권과 기득권 더 이상 안돼…대통합 이뤄내겠다”
반기문, 정체성 모보하고 검증도 숙제…불확실성 더 커져
유력 대권주자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사실상 대선 판에 뛰어들었다. 반 전 총장은 귀국 일성으로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면서 권력의지까지 거론, 입국 기자회견은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당분간 어떤 기성 정당에도 들어가지 않고 제3지대에 머물며 세력을 모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선 판도도 요동치고 있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 색깔이 모호한 반 전 총장의 선택에 따라 정계개편의 회오리가 몰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권 도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부의 양극화, 이념, 지역, 세대 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며 국민 대통합을 강조한 뒤 "패권과 기득권은 더 이상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남을 헐뜯고 소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권력을 쟁취하겠다, 그런 것이 권력의지라면 저는 권력의지가 없다"며 "오로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몸을 불사를 의지가 있느냐, 그런 의지라면 얼마든지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향후 정치 행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측근들에 따르면 당분간 제도 정치권과 거리를 둔 채 기존 대선 주자들과 차별화된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 정무 참모인 이상일 전 의원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이 특정 정당을 지금 선택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며 “새누리당의 많은 분들이 이탈한 상황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에 들어갈 가능성은 높지 않고 (반 전 총장을)맹비난한 더불어민주당에 들어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정체성에서도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 전 총장을 대체로 범보수로 분류하고 있지만 측근들은 이마저 부정하고 있다. 외교관 그룹 측근인 오준 전 유엔 대사는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유엔은 개발도상국을 잘 살게 해주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형성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는데 이 분야들을 한국에서 보수로 보기 어렵다”면서 “국내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본다면 반 전 총장은 결코 보수는 아닐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반 전 총장이 전략적 포석에 따라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조기대선 등의 정치일정을 감안할 때 별도의 신당을 창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데다 반 전 총장과 연대하기 위해 줄을 선 정당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서둘러 ‘정치적 포지셔닝’을 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이 탈당을 저울질하는 새누리당 충청권과 일부 중도 성향의 수도권 의원들과 함께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기다린다는 관측도 없지 않다.
반 전 총장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인해 대선 판도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제3의 지대에 머물고 있는 반 전 총장을 향해 각 정당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빅텐트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실제 반 전 총장의 선택에 따라 탄핵국면에서 사분오열하고 있는 보수진영과 ‘반 문재인’ 연대가 성사될 수도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빅텐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빅텐트가 성사된다면 대선은 양자 대결 구도로 갈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성사 가능성을 장담할 수가 없다. 특히 안철수 국민의 당 전 대표가 선을 긋고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전날 서울시당 개편대회에서 “정치공학적 연대론의 시나리오를 완전히 불사를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자강론’으로 안 전 대표는 ‘연대불가’를 줄기차게 외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반 전 총장의 손을 잡지 않는다면 대선은 3자대결 내지 다자대결 구도가 될 수도 있다.
대선 구도의 불확실성은 적어도 설 이후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이 마냥 모호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는 관측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사실상 대선 캠프를 가동한 마당에 시간을 지체한다면 반 전 총장이 도리어 역풍에 휘말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과 동생 반기상씨 부자의 뇌물 수수 의혹 등 번져가는 도덕성 논란도 방치할 수 없다. 더구나 유력한 상대방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밀리고 있는 지지율을 감안하면 설 연휴 이후가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영종도=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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