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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파면은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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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파면은 국민과 민주주의의 승리다

입력
2017.03.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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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승리했다. 민주주의가 이겼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2017년 3월 10일은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나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우리나라가 헌법과 법치가 살아 있는 민주국가임을 웅변했다. 어떤 권력도 법 위에 있지 않음을 엄중히 선언했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끈 것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광장의 민심이 무너진 헌정 질서의 전면적 재건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신의(信義) 계약을 위반한 국가권력에 시민이 저항권을 행사해 자신의 권리를 되찾아 온 셈이기도 하다. 그 역사적 의미가 4ㆍ19나 6월 항쟁 못지않다. 헌재가 선고문에서“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런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라고 밝힌 데서도 그런 의미가 분명하다. 남은 것은 승복과 통합으로 새로운 공동체,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제 헌재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던 태극기 집회 참석자 2명이 숨진 것은 그 과정이 어떻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신임 배반…헌법 위반 용납 안돼”

헌재는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하면서 재판관 전원이 일치된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법 위반 정도가 그만큼 중대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헌재는 국회가 제시한 13개 탄핵 소추 사유 가운데 ‘최순실 국정농단’부분을 가장 엄중하게 봤다.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과 여러 특혜지원이 최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고 적시했다. 헌법 및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 실정법 위배 행위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재판관들은 “국회와 언론의 계속된 지적에도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세 차례의 담화를 통해 진상 규명에 협조를 약속하고도 특검 조사와 압수수색을 거부한 점도 파면 이유로 추가했다.

다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헌법상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는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이에 대해 두 명의 재판관은 보충의견으로 “대통령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했지만 파면할 정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헌재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관저에 머문 점을 들어 “박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국회의 탄핵소추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히면서도 탄핵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은 아쉽다. 하지만 재판관들은 박 대통령의 행위가 전체적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라는 데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갈등과 혼란의 조속한 수습이다. 지난 석 달간 우리 사회는 탄핵 찬반 세력으로 갈라져 갈등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그 사이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과 사드 조기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추세 등 안보와 경제 등의 복합위기가 밀려들었다. 이런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탄핵 반대 세력의 승복이 절실하다. 헌재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시위와 집회가 계속된다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세력이 헌재 결정에 반발해 도심에서 과격시위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경찰은 소란이 확산되지 않도록 과격폭력 시위 대처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설득하고 사과해야

더 이상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박 전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일부 지지자들의 과격 행동을 자제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급하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헌재 결정에 대해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오늘(10일) 입장이나 메시지는 없고 삼성동 상황 때문에 당장 사저 복귀도 어렵다”고 밝혔다. 탄핵 결정으로 인한 충격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그렇다고 대국민 입장 발표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 마지막까지 헌재 결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에게 일말의 연민조차 느끼기 힘든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헌재 최종 변론서에서 “어떤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박 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심판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는 것이다.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는 “분열과 갈등은 피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해야 한다. 그것이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18대 대통령으로 뽑아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다.

이제는 반목과 대결을 접고 차분히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서두에 “이 선고가 국론분열과 혼란을 종식하고 화합과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말을 되새겨야 한다. 박 대통령 탄핵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5월 대선에서 새 지도자를 뽑고 그를 중심으로 국민이 뜻을 모아 개혁과제를 달성할 수 있어야 촛불이 진정한 ‘시민혁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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