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탄핵 축포 아래 “끝까지 지켜보겠다” 식지 않은 분노
알림

탄핵 축포 아래 “끝까지 지켜보겠다” 식지 않은 분노

입력
2016.12.12 04:40
0 0

광화문 80만 시민 기쁨 만끽

“김기춘ㆍ우병우도 죗값 치러야”

들뜬 분위기 속 압박 목소리

헌재 앞에도 인용 촉구 첫 촛불

10일 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쏘아 올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10일 밤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쏘아 올린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으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수은주가 영하로 뚝 떨어진 10일 오후 11시, 광장에 ‘상록수’의 노랫말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감격에 겨워 환호성을 질렀다. 장장 12시간 동안 이어진 서울 광화문광장의 축제는 결국 국민이 이길 것이라는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상공에서는 폭죽 수십 발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시민 이광동(35)씨는 “지방에서 일을 해 처음 촛불집회에 나왔는데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여서 그런지 다들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다시 광장에 섰다. 일곱 번째 맞은 이날 촛불집회는 전날 시민의 힘으로 기어이 이뤄낸 탄핵안 가결을 자축하는 자리였다. 영하의 추위도 축제의 한마당을 즐기려는 80만 촛불(경찰 추산 12만명)의 나들이를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설렘은 잠시 뿐이었다. 이들은 “탄핵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되뇌었다. 박 대통령이 물러나고 국정을 제 맘대로 주무른 범법자들을 단죄할 때까지 촛불을 꺼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7차 촛불집회 현장은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결연함이 감돌았던 지난주와 달리 흥분과 “해냈다”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지인 6명과 ‘탄핵축하 핵가무단’을 결성한 민중미술가 임옥상(66)씨는 푸른빛이 감도는 네온사인을 몸에 감고 인간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 거리를 누볐다. 청년들이 모인 ‘레드카드 행진단’은 루돌프사슴 머리띠와 산타 모자,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현빈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와 생일축하 노래를 개사한 ‘탄핵축하곡’을 불렀다. 서울 서부지역노점상연합은 이날 오후 신촌 거리 등 서울 4개 지역에서 떡볶이를 공짜로 나눠주며 시민들을 격려했다. 본 집회 자유발언에 나선 우지수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탄핵안 가결은 국회의 승리가 아니라 추위를 뚫고 모인 촛불의 승리”라며 “우리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박 대통령을 자리에서 끌어 내리겠다”고 했다. 광장의 위력을 확인한 시민들은 국민이 주체가 되는 ‘주권 정치’를 선언했다.

들뜬 분위기는 겉모습에 불과했다. 민심의 탄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화문광장에서 1.3㎞ 떨어진 헌법재판소는 이날 처음 촛불 세례를 받았다. 3만여명의 참가자는 2차 행진 도중 헌재에 들러 “국민의 명령이다. 헌재는 탄핵을 인용하라”고 촉구했다. 회사원 서태건(32)씨는 ‘헌재도 박근혜 탄핵’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헌재의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의심과 압박을 거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문구를 가게 앞에 걸어 놓은 통인시장 카페 사장 김에스더(24)씨는 “김기춘, 우병우 등 박 대통령 측근들도 죗값을 치러야 비로소 승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 16명의 얼굴 사진은 광화문광장 바닥에서 시민들 발에 채이는 신세가 됐고, “탄핵 촉구” 대신 “박근혜 구속”과 “황교안도 물러나라” “내각 총사퇴” 등 청와대와 정권을 더욱 압박하는 구호가 메아리쳤다.

‘다시 촛불’을 외친 시민들은 이날도 단 한 명의 연행자와 부상자 없이, 뿌리 내린 비폭력의 집회 문화를 이어 갔다. 자정 무렵 광장에 남아 쓰레기를 치우던 시민 박주명(43)씨는 “각자 위치에서 노력하면 정당하게 보상받는 나라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며 웃었다.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박 대통령이 물러나고 현 정권의 잘못된 부산물인 역사 국정교과서, 이른바 노동법 개혁안 등이 폐기될 때까지 광장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탄핵안 가결 직전에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방해했던 조대환 변호사를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하는 등 뉘우침이나 반성의 기색이 전혀 없다”며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싸움이 비로소 시작됐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글귀를 적은 쌀포대를 들어보이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글귀를 적은 쌀포대를 들어보이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풍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7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시민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풍자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