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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복지 확대가 걱정인 분들에게

입력
2017.09.0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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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올림픽 개막식
런던올림픽 개막식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로 기억되곤 하지만, 나는 식 서두에 영국의 무상의료시스템인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상징로고와 간호사 환자 복장의 인파가 등장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영국 보수당 인사가 “가장 좌파적인 올림픽 개막식”이라고 비판하는 등 이념논쟁이 붙었는데, ‘돈이 없어도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좌파적이라면 과연 우파적 사상이 구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예약대기(응급상황 제외)가 길다거나 과소치료를 한다는 등의 공격도 받지만, NHS는 영국민이 왕실이나 비틀스보다 사랑하는 대상이며 영국에 불었던 민영화의 광풍도 비껴갔다.

우리도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내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아동수당 신설, 기초연금 확대 등의 복지 확대 정책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복지 담론도 무성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복지 확대에 대한 지지가 높지만, ‘이래도 되는 걸까’ 불안감을 표하는 사람들도 상당한 것 같다. 복지를 무조건 ‘포퓰리즘’이라 매도하는 층은 제외해도, 자기 주머니보다 나라 살림을 더 걱정하는 선량한 이들도 그렇다. 그런 불안감은 우리가 가는 길을 점검하게 해주고, 교정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흡하나마 점검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은 ‘돈 푸는 보건ㆍ복지 치중… 돈 버는 성장동력 확충엔 소홀’ 이었다. 복지와 성장을 대립으로 보는 시각은 뿌리 깊은 것 같다. 그러나 시장 자본주의의 화신이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 2014년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방해한다”는 보고서를 내고, 기조를 바꾸었다. 지니계수(0은 완전 평등, 1은 완전 불평등)가 1지니포인트(지니계수×100) 상승하면, 경기 확장 국면이 7% 짧아진다는 것. IMF는 2015년에도 “부자가 돈을 벌면 성장이 정체한다”며 낙수효과가 틀렸다고까지 지적했다. 소득상위 20%의 수입 증가는 중단기적으로 국내총생산(GDP) 하락으로 이어지는 반면 하위 20%의 소득증가는 GDP상승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복지와 성장이 왜 친구관계인지는 1936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내놓은 이론 중 부유층일수록 추가로 돈을 벌면 덜 쓴다는 원리(한계소비성향 체감의 법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억 연봉자가 한달 100만원 더 벌어봤자 더 많이 소비하지 않지만, 한달 100만원 버는 사람은 100만원이 더 생기면 거의 대부분을 소비한다는, 어찌 보면 상식적인 이야기이나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생산은 이미 차고 넘치니 소비여력이 성장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케인스의 이론은 복지확대의 토대가 됐다.

복지의 뒷면인 증세문제는 어떤가. 세계대전 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의 높은 경제성장 시기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린다. 하지만 그 기간 미국조차 소득세 최고세율이 70,80%대(1960년까지 92%)였으며, 불평등이 가장 낮았던 ‘분배의 혁명기’였다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도 고도 성장기였던 80년대까지 소득세 최고세율이 70,80%대였다.

IMF는 조세 회피와 탈루행위 증가 가능성을 고려해 ‘세수를 극대화하는 최고세율’을 50∼60%로 분석하고 있고, 한국금융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50%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증세 필요성을 밝힌 적이 있다. 한국은 현재 40%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오늘날 복지와 세금, 성장에 대한 오해는 어디서 온 유령일까 싶다. 폴 크루그먼은 “고소득층이 정치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더 많고, 소득 하위층은 정치적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러니 복지 확대로 국가에 누가 될까 하는 불안함은 조금 거뒀으면 싶고, 저소득층 등 복지수급자도 위축감을 덜었으면 좋겠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라고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복지는 비용이 아니라 성장이며, 복지가 자본주의를 구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진희 정책사회부 기자 river@hankookilbo.com

런던올림픽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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