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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헌보다 중요한 민주주의 기반 강화

입력
2014.10.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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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형태 개헌이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다. 개헌선을 넘는 수의 의원이 그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란다. 즉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과정에서 심각한 폐해가 발생한다’ ‘대통령제로는 1987년 이후 훨씬 복잡해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이익과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기 어렵다’ ‘대통령 5년 단임제로 인해 그리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가 달라 책임정치의 구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개헌의 길은 험난하다. 아직 정부형태에 대한 합의가 없다. 이원집정부제(분권형대통령제)가 자주 거론되지만, 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제 지지자들도 적지 않다. 대통령은 경제 우선을 빌미로 개헌정국 자체를 원치 않고 있다. 개헌작업과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선거법을 비롯한 각종 정치관계법 개정도 지난한 과제이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개헌의 선결문제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이다. 의원 개개인의 정치적 미래는 물론 정권의 향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의 선행과제는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방지책과 주요 권력기관들의 중립성 강화 방안이 돼야 할 것이다. 국정원 등의 대선개입으로 선거의 기본 규칙이 준수되리라는 신뢰가 붕괴된 상태에서 현직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지휘할 수 있게 되는 개헌을 쉽게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정부형태를 바꾸거나 손질하는 개헌의 전망은 어둡다. 그렇다면 대통령 탓만 하지 말고 개헌 없이도 할 수 있는 일, 즉 우리 정치의 체질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에 국회의원들의 뜻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용기 있는 일이다.

일단 현행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통령 ‘제왕화’의 원인을 완화하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권력’의 주된 원천은 대통령이 인사권을 매개로 정권의 수단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과 같은 전통적인 권력기관과 정보사회에서 정치적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이다. 이 기관들이 대통령 개인이 아닌 법에 충성할 수 있도록 기관장을 비롯한 상층부 구성원들의 인사제도 및 조직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대통령 혹은 정권 스캔들에 대한 국정조사를 다수파의 동의와 무관하게 독일처럼 국회의 소수파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참여의 인적 기반을 확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강화하는 것도 권위주의적, 위헌적 통치를 억제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 공무원의 정당가입 내지 정치헌금을 금하고 있는 정당법 및 정치자금법, 공무원법, 법적 근거 없이 직원들의 정당가입을 막고 있는 다수 대기업의 부조리한 사규 또는 관행, 민주주의의 생명인 언로를 좁히고 유권자들의 활발한 정치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공직선거법이나 명예보호법제 등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또한 정략적 사고를 떠나 국민들에 대한 민주교육과 경제민주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 소수를 위한 경제정책 속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극우전체주의적 사고로 오염돼 가고 있는 ‘일베’의 창궐은 민주주의 앞날에 대한 위험신호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를 지역적으로 분열시켜 기득권세력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원화된 이익과 정견을 국정에 좀 더 균형 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개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비민주적인 법제와 정치문화가 민주주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이 한국 정치의 고질을 단번에 치유할 수 있는 묘약일 수는 없다. 이를 개선하는 일은 개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정부형태 변경이 정치공동체를 대상으로 하는 효과가 불확실한, 따라서 위험하기도 한 거대실험이라면, 상술한 개혁작업은 효과가 확실한 민주주의 기반 강화작업이다. 민주적 토대가 부실해서는 어떤 정부형태를 택하더라도 독선적, 권위주의적, 헌법침해적 정치를 청산하기 어렵다. 내각제나 이원정부제 모두 다수 정파가 입법권과 (평시의) 집행권을 동시에 장악하기 때문에 집행권에 대한 견제가 더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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