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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숙소에 땅굴… 송유관 기름 80억원대 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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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숙소에 땅굴… 송유관 기름 80억원대 절도

입력
2015.08.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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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18개월간 전국 수백곳 탐문

용인 등 9곳서 훔친 2개 조직 검거

신발장 통해 길이 50m나 뚫어

밤에만 작업하며 감시망 피하고

바지사장 내세워 '꼬리 자르기'도

경찰이 송유관 기름을 훔친 박모(48)씨 일당이 경기 용인시 한 주유소 숙소 안에 파 내려간 땅굴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경찰이 송유관 기름을 훔친 박모(48)씨 일당이 경기 용인시 한 주유소 숙소 안에 파 내려간 땅굴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11일 오후 8시쯤 경기 용인시 처인구 마북동의 한 주유소.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 소속 형사 7명이 대한송유관공사 직원들과 함께 주유소 2층 직원 숙소를 급습했다. 형사들이 숙소 안 신발장 문을 여니 입구가 직사각형(가로 1m, 세로 1.5m) 모양인 땅굴이 나왔다. 20여m 길이의 어둑한 땅굴 끝으로는 유압호스 2개가 꽂혀 있는 지름 20~30cm 송유관이 보였다. 호스에 연결된 특수밸브만 돌리면 송유관을 흐르던 기름이 방향을 바꿔 주유소 기름탱크로 흘러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경찰은 이곳에서 바지사장 등을 검거, 추적을 이어갔고 이달 초 국내 최대 규모의 송유관 기름 절도 2개 조직 일당 29명을 모두 붙잡았다. 18개월간 전국 주유소 수백 곳을 탐문하며 매달린 끝에 거둔 성과였다.

경기청 광수대는 27일 특수절도 및 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A조직 총책 박모(48)씨 등 11명을 구속하고 이모(49)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현금 3억원과 1㎏짜리 금괴 11개(5억원 상당)를 압수했다.

B조직 총책 김모(48)씨 등 9명도 붙잡혀 김씨를 포함해 일당 5명이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A조직 박씨 등은 2013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용인, 평택, 경북 김천, 충북 청주 등 전국 7곳에서 송유관을 뚫어 81억원 상당의 기름(450만ℓ)을 훔친 혐의다.

B조직 김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4월까지 인천, 전남 순천 등 2곳에서 주차장 부지 등을 임차해 땅굴을 파 송유관에서 2억원 상당의 기름(13만여ℓ)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조직의 행각은 한편의 범죄 영화와도 같았다. 이들은 ‘송유관 매설 주의’표지판이 있는 도로의 인근 주유소를 빌린 뒤 보일러실이나 숙직실 지하로 땅굴을 파 범행했다. 땅굴은 직접 제작한 짧은 삽이나 암반 드릴 등으로 밤에만 뚫었다. 입구는 격 벽을 쌓고 그 앞에 신발장, 옷장 등을 놓아 위장했다. 이들이 판 땅굴은 깊이 2.5~3m, 길이 10∼50m에 달했다.

땅굴을 뚫었지만, 한꺼번에 많은 양의 기름을 빼돌리지는 않았다. 매 순간 훔치는 기름의 양을 일정하게 조절해 대한송유관공사의 유압관리 시스템 ‘감시망’에 걸리지 않게 한 것이다.

영업은 ‘바지사장’을 내세운 뒤 아르바이트생조차도 도유 사실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했다. 훔친 기름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싸게 팔지 않았고 다른 주유소나 도매상으로 반출할 때는 화물칸에 탱크로리를 설치한 덤프트럭(20톤)을 이용해 공사차량인 것처럼 위장했다.

A조직의 경우 지난해 1월 평택에서 한차례 수사망에 걸렸으나 주유소 바지사장 역할을 하던 정모(47)씨가 검찰에 위장 자수하는 이른바 ‘꼬리 자르기’를 시도, 빠져나기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직원 대부분이 유사석유 제조 및 판매 등을 일삼던 자들”이라며 “송유관 도유가 유사석유 제조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이 남는다는 점에 착안해 전국의 기술자를 모집, 지부 형태로 주유소를 운영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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