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얄미운 세대

입력
2015.05.13 18:31
0 0

20~30대의 눈에 비친 40대는

‘다 누린 세대’라는 인식

미생들을 위해 더 많은 고민해야

난 1965년생이다. 우리 나이로 치면 이미 오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종종 40대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좀 궁색하긴 해도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만으론 40대가 틀린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몇 년 후배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선배, 요즘 젊은 친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세대가 누군지 아세요”

“장년층이상 아니겠어. 특히 60대.”

전쟁과 빈곤을 경험한 60대 이상은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도무지 패기와 끈기란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불평만 쏟아내는 젊은 세대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하지만 20~30대는 척박하다 못해 절망적인 현실은 모르면서 그저 무용담만 늘어 놓는 어른들과 더 이상 말조차 섞기 싫어한다. 상반된 정치성향은 그렇다 쳐도, 과연 우리 사회의 전 연령대를 통틀어 이들 ‘국제시장 세대’와 ‘미생 세대’만큼 충돌적인 지점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후배의 얘기는 전혀 뜻밖이었다. “젊은 애들은 60대 이상이 아니라 40대 중후반 세대를 더 고까워 한대요.”

40대 후반이면 딱 내 또래다. 누구보다 젊은 세대의 갑갑한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어떻게든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굳이 편을 가르자면 60대 보다는 20~30대쪽에 서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오히려 혐오대상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물어봤다. “젊은 친구들은 지금 40대(후반)를 모든 걸 다 누린 세대로 봐요. 지들은 다 누렸으면서 고생한 척하고 때때로 잔소리까지 하니까 더 얄미운 거죠.”

이날 대화 이후 꽤 긴 생각을 해봤다. 과연 우리 세대가 뭘 누렸는지, 아니면 대체 뭣 때문에 다 누린 세대처럼 보이는 것인지.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국 사회에서 세속적 인생경로의 첫 번째 관문인 대학입시부터 따져봤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1980년 대초는 역사상 대입문턱이 가장 낮은 시기였다. 전두환 정권이 도입한 졸업정원제(대학졸업정원 대비 130%를 선발하는 제도)에 따라 대입 문호는 넓디 넓었다. 철저한 암기 위주의 객관식 학력고사 점수와 약간의 내신점수만 합산하는 가장 심플한 전형 방식이 적용됐기 때문에, 선배들처럼 본고사 준비로 씨름할 필요도 없었고 후배들처럼 수시와 정시, 논술 걱정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과외금지조치 덕에 사교육에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취업도 비교적 수월했다. 비용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라 주요 그룹마다 매년 수천~수만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다. 눈높이만 살짝 조절하면 취업재수는 필요 없었고, 취직은 곧 정규직이었다. 실업률이 2%를 밑도는 완전고용의 시대였다. 입사 후엔 흥청망청 거품의 달콤함도 맛봤다.

몇 년 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많은 기업이 쓰러졌고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후배들은 갑자기 닫힌 취업 문 앞에서 발을 굴렀고, 선배들은 눈물을 흘리며 회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젊은 직원 신분이었기 때문에 그 폭풍마저 피할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 쪽으로 잘 갈아탄 일부 친구들은 곧 이어 닥친 ‘벤처열풍’을 통해 엄청난 돈방석 위에 앉기도 했다. 부자는 못됐지만, 결혼과 출산조차 버거워하는 젊은 세대에 비하면 분명 풍요하고 행복한 세대였다.

회사 다닌 날보다 다닐 날이 훨씬 적은 지금까지도 축복은 이어지고 있다. 천금 같은 정년연장의 선물. 바로 위 선배인 ‘베이비붐’세대에 비해 우리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2~3년 가량 회사생활을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20~30대 때의 10년보다도 값진 시간이다.

생각해보니 확실히 ‘누린 세대’였다. 따져보면 더 가진 것도 있고 덜 가진 것도 있지만 ‘국제시장’세대, ‘베이비붐’세대, 그리고 지금 ‘미생’세대에 비하면 분명 많은 것을 누려왔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에 준 것 이상으로 받았다는 생각이다.

이젠 사회에, 특히 기회조차 봉쇄당한 젊은 친구들을 위해 뭔가를 돌려줘야 할 것 같다. 그게 뭘 지는 더 고민해야겠지만, 적어도 ‘자기들은 다 누려 놓고…’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