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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기자

등록 : 2017.11.29 04:40
수정 : 2017.11.29 08:39

평소 연차 눈치주다, 연말돼 “다 써라” 독촉

직장인 78% “아직 소진 못해”

등록 : 2017.11.29 04:40
수정 : 2017.11.29 08:39

연차 보상금 절감하려 강요

직원들 “어차피 맘 놓고 못쉬는데 금전보상이라도 받는 게 낫다”

“기업들 연초 성과계획 세울 때 구성원 재충전 계획도 포함해야”

은행원 채모(31)씨는 최근 부서장으로부터 “연말까지 남은 연차휴가를 전부 소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올해 주어진 13일 연차 가운데 남은 연차는 7일. 연말까지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면 남은 한 달 남짓에 모두 사용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게다가 지시하는 배경이 탐탁지 않았다. 연차소진에 솔선수범하는 문재인 대통령 말처럼 ‘사람이 먼저’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결국 돈(연차보상비 절감) 때문이란 게 그와 동료들 생각이다. 채씨는 “부서장들이 ‘조직원 잔여연차가 많을수록 부서장 성과평가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회사 엄포에 연차를 쓰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연중엔 ‘연차’ 얘기만 나와도 눈치만 주다 연말만 오면 ‘연차소진 전도사’로 돌변하는 상사 모습이 어이가 없다”고 했다.

연차소진을 두고 직장 내 눈치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연말만 되면 벌어지는 ‘쉬어라’, ‘못 쉰다’는 다툼. 회사와 간부들은 남은 한 달 동안 쓰지 않은 연차를 다 이용하라고 독려하는 반면, 직원들은 연차보상비를 아끼려는 회사와 성과평가를 의식한 간부들 합작품이라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맞서고 있다.

다수 직장인들은 “연차를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것이라 일을 줄여주면 알아서 갈 것”이라며 “연차 소진은 지시나 독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김모(28)씨는 “이미 연말까지 작가미팅이나 원고 마감 같은 변동 어려운 일정이 꽉 차 있다”며 “사내에 남은 연차를 모두 사용하라는 공문이 이곳 저곳에 붙어 억지로 휴가를 내긴 했지만, 결국 집에서 일을 하게 될 게 뻔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를 위한 연차소진인지 모르겠다’는 불만도 나온다. 사원 휴식 보장 차원이 아니라 경비 절감 측면이 더 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34)씨는 “연차보상비를 받을 수 있는 것까지 다 쓰라고 지시가 내려올 때면 결국 그거(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라고 했다.

회사와 간부들은 ‘오해’라고 손사래를 친다. 일년 내내 눈 앞 업무를 해결하기도 바빠 수시로 연차를 허락하긴 어려웠던 것이고, 연말에야 황급히 ‘연차 독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계열사 부장 안모(47)씨는 “큰 규모 사업에 몰두해야 하는 시기가 몇 번 다가오면 자연히 연말로 미뤄지게 된다”고 했다. “다 생각해서 쉬라고 하는 건데 내키지 않으면 안 가면 되는 것 아니냐”면서 부서원들과 충돌하는 간부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문화 개선이 우선이라고 지적한다. 유규창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한해 성과계획을 세울 때 구성원의 역량개발 계획과 함께 재충전 계획도 같이 세우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최근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직장인 7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이 중 596명(77.7%)이 올해 연차가 아직 남았다고 했다. 대표적 이유는 ‘상사의 눈치(39.4%)’와 ‘업무과중(37.9%)’, ‘연차를 잘 사용하지 않는 사내 분위기(27.5%)’, ‘연차를 쓸 만큼 특별한 일이 없어서(19.5%)’가 꼽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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