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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유독가스·화염 밀려와 아스팔트에 몸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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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화재 참사] “유독가스·화염 밀려와 아스팔트에 몸 던졌다"

입력
2017.12.22 18:0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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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클럽 음악소리가 커서

비상벨 못 들어 대피 늦어져

2층 창문으로 여성들 뛰어내려”

“현장 나오자 ‘펑’ 불길 치솟아

스프링클러는 작동도 안 해”

건물주가 고의 폐쇄한 의혹도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8층짜리 스포츠시설 건물에서 불이 나 119 소방대가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발생한 화재 참사로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북 제천 하소동 노블 휘트니스 스파 건물 외벽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2,3층 사우나 유리창은 내부 폭발로 날카롭게 깨져 있었고, 매캐한 냄새가 여전히 코를 찔렀다. 처참함 그 자체였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생존자들은 “화재 경보음이 울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유독가스가 건물 전체로 퍼졌다”며 보호장비도 없이 아스팔트로 몸을 던져야 했던 악몽 같은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 쳤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이 건물 3층 남자 사우나를 찾은 황모(35)씨는 “온탕에 몸을 담근 지 1분 만에 갑자기 불이 났다는 소리가 들린 뒤 순식간에 신발장이 있는 출입구까지 시커먼 연기가 밀려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어딘가에서 들려온 ‘비상계단이 저기 있다’는 소리를 듣고 남탕에 있던 10여명과 같이 3층 비상구로 가까스로 탈출했다”며 생사 갈림길에 섰던 순간을 전했다.

황씨에 앞서 2층 사우나에서 가까스로 몸을 피한 여성 6, 7명은 2층 비상계단 창문에서 속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아스팔트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황씨는 “이날 오후 4시 20분이 넘어서면서 2,3층이 연기가 가득 차면서 시야확보가 어려운 상황이 돼 여성이나 노약자는 대피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화재현장에 출동해 구조활동을 벌였던 한 간호사는 “여성 사망자 대부분이 2층 사우나에서 발견됐고, 질식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여탕이 있는 2층의 경우 내부 비상구 쪽에 짐 바구니 등 적재물로 사실상 폐쇄돼 인명피해가 컸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화재 당시 3층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이모(51)씨는 “건물에서 내려오다 유독가스에 숨이 막혀 4층 화장실로 대피했다 오후 4시가 넘어 출동한 소방대원들에 의해 가까스로 구조됐다”고 말했다. 그가 빠져 나오자 필로티 구조인 건물 1층 외벽을 타고 엄청난 화염과 시커먼 연기가 위쪽으로 치솟았다. 발화 당시 헬스클럽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 놓아 운동을 하던 20여명은 화재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들은 매캐한 연기가 건물을 뒤덮은 뒤에야 비상계단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22일 오전 경찰, 국과수, 소방당국이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참사를 빚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현장에서 22일 오전 경찰, 국과수, 소방당국이 화재 현장 감식을 위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물 내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소방차 진입은 더뎠다. 주변 불법주차 차량과 소방당국의 대처 미숙으로 구조는 좀처럼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이 건물 9개층에 설치된 356개 스프링클러 작동밸브가 아예 꺼져 있어 건물주 측에서 고의로 폐쇄시킨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화재 당시 건물 청소를 하던 안모(51ㆍ여)씨는 “매캐한 냄새가 난 뒤에야 비상벨이 울렸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며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 나온 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화재 현장을 목격한 하소동 주민들은 불법주차 된 차량으로 인해 소방차와 인력 접근이 지연돼 피해를 키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홍모(65)씨는 “화재 초기 소방차가 스포츠센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물줄기가 약해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 삼키는 불길과 연기를 잡기에 역부족이었다”며 “화재 신고와 동시에 경보음이 제대로 울렸는지도 의문”고 분통을 터뜨렸다

제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n@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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