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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현지 르포] 김정남 휘청대며 “얼굴에 액체 뿌렸다” 도움 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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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현지 르포] 김정남 휘청대며 “얼굴에 액체 뿌렸다” 도움 청해

입력
2017.02.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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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경찰들이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15일 여행객들을 살피고 있다. 김정남이 13일 이 곳에서 독극물 테러를 당하자 말레이시아 당국은 공항의 보안 수준을 평소보다 격상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말레이시아 경찰들이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15일 여행객들을 살피고 있다. 김정남이 13일 이 곳에서 독극물 테러를 당하자 말레이시아 당국은 공항의 보안 수준을 평소보다 격상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죽어서야 보디가드들한테 둘러싸였군.”

15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자리 잡은 쿠알라룸푸르병원(HKL) 부검동.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 앞을 지나던 병원 관계자는 “이 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들 앞으로는 각국에서 몰려든 200여명의 취재진이 벽을 두르고 있었다. 그는 “그런 (높은) 사람이 어떻게 수행원도 없이 여행길에 올라 이런 변을 당했냐”며 “두고두고 회자될 사건”이라고 말했다. 첩보 영화의 암살극 장면과도 같은 사건의 주인공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시신으로 잠시 머무는 부검동 주변은 쿠알라룸푸르의 더운 대낮보다 뜨거웠다.

사건이 발생(13일 오전 9시)한 지 이틀여가 지난 이날 오후 1시. 김정남이 용의자들의 독극물 공격으로 쓰러졌다고 알려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KLIA 2)의 셀프체크인 기기(키오스크) 앞은 시장통처럼 북적였다.

당국자 및 현지 관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당시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은 출국을 위해 줄을 서 있던 김정남의 뒤로 접근했다. 한 여성이 머리를 뒤로 꺾은 뒤 그의 얼굴에는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렸고, 다른 여성은 손수건으로 10초 이상 그의 얼굴을 덮었다. 김정남은 휘청대며 30여m를 걸어가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어지럽다. 누군가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며 도움을 청했다. 김정남은 기절 직전 상태였다. 쓰러진 그를 추슬러 응급진료소로 옮긴 직원을 수소문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상부의 지시라도 받은 듯 공항 직원들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지의 한 기자는 “언론도 통제가 심하고, 비판 기사를 썼다간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키오스크는 출국심사대 바깥 쪽으로만 있으며, 항공기 탑승 줄은 그 라인 너머에 만들어 질 수 있는 구조로 확인됐다. 공항 관계자는 “우리는 아는 게 없다”면서도 “저 너머로 들어가면 일반인들은 쉽게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측 정보당국의 말대로 김정남이 엄격한 통제가 이뤄지는 출국심사대 너머의‘탑승 줄’에 있다 변을 당했다면 말레이시아 정부로선 대단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정남을 살해한 용의자들은 택시로 사라졌다. 현지 경찰들은 사라진 용의자들의 단서를 하나라도 더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암살 지시설, 북한 체제의 불안과 맞물리면서 경찰들의 낯빛은 사뭇 심각했다.

피습 후 구급차 안에서 사망한 김정남의 시신은 푸트라자야 병원에서 이틀 밤을 보냈고 이날 오전 북쪽으로 20㎞ 가량 더 떨어진 HKL로 다시 옮겨졌다. 이 병원과 경찰은 삼엄한 경계망을 두르고 취재진의 접근을 막은 채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현지 매체 관계자는 “푸트라자야 병원이 부검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보다 시설이 좋은 HKL로 시신을 이송했다”고 전했다.

이날 아침 영안실 밴 차량에 실려 HKL에 도착한 김정남의 시신을 맞이한 것은 기관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다. 이들이 탑승한 경찰차량 4대의 호위를 받으며 김정남의 시신은 부검동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오후 2시 외교관 번호판과 북한기가 달린 재규어 검정 세단 등 승용차 3대가 HKL 부검동 주차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 교민은 “번호판이 붉은색이고 숫자와 알파벳 조합이 대사관차량이 맞다”고 확인해줬다. 차량에서는 잠시 후 강철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 대사는 5시간 가량 머물렀고 오후 8시쯤 타고 왔던 차량에 올라 병원을 떠났다. 강 대사는 직접 김정남의 부검을 참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북한대사관 측은 부검 전 김정남 시신 인도를 강력히 요구하는 등 말레이시아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시신 부검을 진행하는 쿠알라룸푸르병원 주변에서 취재진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말레이시아 경찰이 김정남 시신 부검을 진행하는 쿠알라룸푸르병원 주변에서 취재진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정민승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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