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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운동가 베르타 폰 주트너

입력
2016.06.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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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6월 21일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19세기 말, 베르타 폰 주트너는 선구적 반전 평화운동가로서 유럽의 군국주의를 꾸짖었다.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19세기 말, 베르타 폰 주트너는 선구적 반전 평화운동가로서 유럽의 군국주의를 꾸짖었다.

베르타 폰 주트너(1843~1914)는 오스트리아 작가 겸 반전ㆍ평화운동가로 190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최초의 반전소설인 1889년 발표작 ‘무기를 내려놓으라!’(정지인 옮김, 뿌리와이파리)가 그의 작품이다.

베르타는 1843년 6월 9일 합스부르크 제국의 속국이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보헤미아 백작 집안이던 부계 친척들은 상대적으로 지체 낮은 그의 모계를 못마땅해했고,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혈통 덕을 거의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자 29세의 그는 친척들에게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일을 하기로 결심, 오스트리아 빈의 주트너 남작 집안에 가정교사로 취직한다. 그는 자신보다 7살 어린 그 집안의 막내 아들 아르투어 군다카르와 연인이 된다.

베르타가 알프레드 노벨의 비서가 된 건, 아들과의 연애를 훼방 놓기 위해 남작 부인이 소개해 등을 떠민 결과였다. 42세 독신이던 노벨은 32세 베르타의 교양에 매혹됐지만, 베르타는 아르투어가 보낸 구애 전보를 받고 곧장 빈으로 돌아가 그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그는 독립적이고 파격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었다.

당시 유럽은 호전적 민족주의에 들려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 가족을 등진 채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활동하던 베르타는 열렬한 반전주의자가 돼갔고, 평생 친구처럼 지낸 노벨과 서신을 교환하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곤 했다. 노벨이 평화상을 제정한 것도 베르타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 알려져 있다.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한 군인의 딸이 군국주의 시대를 살며 전쟁의 물리적ㆍ정신적 참상을 겪는 내용이다. 주제는 소설 끄트머리에서 한 인물(주인공의 아들)이 하는 말 속에 담겨 있다. “지금의 삼국동맹이 그렇듯이 세 나라가 연합하여 하나의 평화동맹을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섯 나라는 그렇게 못할까요?(…) 오늘날 우리의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영리한 것처럼 굴면서 야만을 비웃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수많은 일들에서 아직 다섯까지도 못 세는 수준입니다.” 톨스토이는 1891년 베르타에게 쓴 편지에서 “스토의 유명한 작품이 노예제 폐지를 선도했듯이, 당신의 작품이 전쟁 폐지를 선도하길 기원한다”고 썼다.

그는 여성에게 참정권도 없던 당시 유럽에서 여러 평화운동단체를 설립해 주도적인 활동을 펼쳤고, 1차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14년 6월 21일 암으로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l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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