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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나를 찾아 토요일 저녁 8시면 시네마 천국으로

입력
2018.04.04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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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취향 아닌 내 취향 맞춰

주부들 함께 모여 영화감상

"공감하며 의견 교류 행복해"

자기 마음 그림으로 표현하는

미술심리치료 수업도 활발

수제캔들ㆍ방향제 교실 인기

경기 파주에 거주하는 엄마들의 영화동아리 ‘함께 보다’는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8시에 모여 ‘소확행’을 실천한다. ‘함께 보다’ 제공
경기 파주에 거주하는 엄마들의 영화동아리 ‘함께 보다’는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8시에 모여 ‘소확행’을 실천한다. ‘함께 보다’ 제공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은 바쁘다. 아이들 건사하고 끝도 없는 집안 일을 하느라 자신을 돌볼 여유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라면 ‘틈새시간’을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엄마들이 있다. 취미를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며 ‘소확행’을 실천하는 주부들의 일상을 소개한다.

토요일 오후 8시, 주부들의 ‘시네마 천국’

한 달에 두 번 경기 파주시의 한톨작은도서관은 ‘시네마 천국’이 된다. 낡은 극장의 영사실 기사 알프레도(영화 ‘시네마 천국’)가 필름을 상영하듯 도서관은 작은 영화관으로 탈바꿈한다. 그곳은 10명의 주부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공간이다. 매달 둘째 넷째 토요일 오후 8시에 엄마들을 위한 ‘영화 천국’은 문을 연다.

40~60대 주부들이 만든 영화동아리 ‘함께 보다’는 올해로 3년째가 됐다. ‘함께 보다’를 이끌고 있는 주부 유진희(46)씨는 “주말이면 남편과 아이가 알아서 배려해주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며 웃었다. “적어도 주부들은 퇴근시간이 없잖아요.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 쉽지 않은데 이날만큼은 불가침 구역이 되어버렸어요.”

엄마들이 모였다고 별다른 활동이 없는 모임으로 보면 안 된다. 1년에 일정 금액의 회비를 걷어 영화 보는데 쓰고, 도서관에 기부도 한다. 영화를 본 뒤에는 각자의 생각을 펼치는 시간도 마련한다. 가끔은 소박한 일탈도 실행한다. 최근에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에 생긴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영화 ‘더 미드 와이프’를 관람했고,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열린, 책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의 저자 조경국씨 북콘서트와 관련해 영화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40대가 되면서 부쩍 외로움을 느낀다는 김연숙(43)씨는 “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남편도 회사 생활하느라 정신 없어 외로운 처지가 된다”며 “주부들이 토요일 저녁에 약속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동아리 ‘함께 보다’의 회원인 주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주=강은영기자
영화동아리 ‘함께 보다’의 회원인 주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파주=강은영기자

1년 전 ‘함께 보다’에 동참한 김진희(43)씨는 “가족끼리 영화를 보면 아이나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로 맞추게 된다”면서 “최신영화나 블록버스터가 아닌 특별한 영화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선택해서 본다는 게 즐겁다”고 했다.

‘함께 보다’에서 감상한 영화는 예술영화가 많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베스트 오퍼’(2014), ‘드레스메이커’(2016),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더 디너’(2015), ‘우리들’(2016),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7), ‘원더’(2017), 애니메이션 ‘피아노의 숲’(2008), ‘괴물의 아이’(2015) 등이다. 이중 ‘더 디너’와 ‘원더’는 꼭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란다.

누가 영화동아리 아니랄까 봐 영화 얘기를 해달라고 하니 눈빛부터 달라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이다 보니 ‘더 디너’라는 영화가 와 닿았어요. 아이들이 사고를 친 뒤 태도가 변하는 두 형제 부부가 나오죠. 한 쪽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은 죄를 무마시키려고 해요. 저 역시 내 자식의 잘못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더군요.”(유진희씨)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아이를 둔 가족을 그린 영화 ‘원더’도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웃, 학교 등이 다같이 보고 고민해볼 게 많은 작품”이라고 꼽았다.

이들은 두 시간 가량 영화를 감상한 뒤 이어지는 토론 한마당에 더 큰 기대를 갖기도 한다. 강미점(43)씨는 “내가 보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는 시간”이라며 “영화를 전부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다르게 해석한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사고의 골이 깊어지는 걸 느낀다”고 털어놨다. 김진희씨도 “주부들은 자신의 생각을 누구와 나눌 기회가 별로 없는데, 영화동아리를 통해 같이 공감하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연말에는 파티를 열었다. 음주가무를 떠올렸다면 오산. 영화동아리답게 주부들은 ‘내 인생의 영화’를 이야기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쯤 되면 ‘함께 보다’의 회원들을 ‘반(半) 영화인’으로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주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석고 방향제를 만들고 있는 모습. 송미영씨 제공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주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석고 방향제를 만들고 있는 모습. 송미영씨 제공

미술치료 배우고, 동네 ‘사랑방’도 만들고

마치 몬드리안의 작품처럼 직선을 이어 만들어진 면 안에 색칠을 한다. 일곱 색깔 무지개를 스케치북에 크게 그려 넣어도 된다. 성의 없다고 무시당할 그림들이 빼곡하게 전시된 공간이 있다. 서울 개봉동의 한 아트센터에는 미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수업이 한창이다. 일명 ‘아트테라피’라고 불리는 미술심리치료를 배우는 주부들이 꽤 많다. 배운다는 강박관념에 평가를 받거나 비교당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수업의 취지는 있는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즉 자신이 그린 그림을 통해 현재의 심리를 진단 받고, 마음가짐을 정리할 수 있게 도움을 받는 곳이다. 현재 임신 3개월인 예비엄마 강세영(39)씨는 지난 1년 간 이 공간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을 들었다. 처음에는 2~5명의 친구들과 함께 취미를 공유하는 것에 끌렸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며 그간 몰랐던 나의 심리를 깨닫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이야기를 하며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강씨는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을 마주했을 때 힘들더라”면서도 “그것을 극복해가는 나와 친구들을 발견했을 땐 행복감에 젖었다”고 했다.

수업에 참여하는 주부들은 대개 아이들을 위해 배우러 왔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곤 한다고. 마음 맞는 엄마들은 학교나 병원 등에 봉사활동을 나가며 재능기부도 한다. 나와 가족을 위한 배움을 바깥으로 뻗으며 선순환으로 이어가는 셈이다.

손재주가 좋은 주부 송미영(40)씨는 동네에 ‘사랑방’을 제공한다. 연수원이나 문화센터 등을 통해 바리스타 수업을 했던 경력을 살려 엄마들의 ‘놀이터’를 만들었다. 경기 파주시의 자택도 좋고, 주부들의 모임이 있는 장소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지난해 수제 캔들과 방향제를 만드는 교실을 열어 주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송씨는 여러 주부들에게 자신이 터득한 지식을 나누고, 대화를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의외로 손을 잡아줬으면 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가정에 매달리며 존재감을 잃어가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거든요.”

파주=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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