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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상투적인 것에 대하여

입력
2015.08.1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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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을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도 있다. “살아생전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님이 하늘 정원에 꽃나무를 심으시나 보다// 자꾸/ 내 머리카락을 뽑아 가신다.”(고영, ‘탈모’ 전문)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돌아가신 어머님과 연결되면서 전혀 다른 생각과 느낌의 테두리 안으로 옮겨간다. 다른 예도 있다. “코를 골았다고 한다.(…)그럴 리 없다. 허술해진 푸대자루가 되어 시끄럽게 구는 그 자가 바로 나라니, 용서할 수가 없다. 도대체 몸을 여기 놓고 어느 느티나무 그늘을 거닐었단 말인가.”(최정례, ‘코를 골다’ 부분)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이런 ‘유체이탈 화법’은 얼마든지 권장할 만하지 싶다.

클리셰라는 말이 있다. 인쇄의 연판(鉛版)을 뜻하는 불어인데, 거기서 연원하여 판에 박은 문구, 진부한 표현이나 생각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시인은 이 클리셰, 상투어로부터 가장 먼 쪽에서 말을 찾고 생각의 길을 여는 사람들이다. 진부한 표현에 의존하는 순간, 현실의 생생함과 풍부함, 사실에 충실한 언어를 찾는 일은 중단된다. 상투어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차단하면서 생각으로부터도 우리를 차단한다. 우리의 일상이 어느 만큼 상투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측면은 그것대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 상투어들의 울타리 바깥에서 생각과 말의 길을 찾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하면서 그의 말과 생각이 온통 상투성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바 있다. 아이히만은 나치에 의해 주입된 선전 문구나 관청 용어 같은 공허하고 판에 박힌 말들을 지겹도록 반복하면서 자신은 유대인 절멸 정책의 한 톱니바퀴였을 뿐이었다고 강변한다. 심지어 그는 교수대 앞에서까지 자신의 생각, 자신의 느낌으로 이루어진 말 대신 언젠가 남의 장례식장에서 들었을 법한 언설을 늘어놓는다. 지금 닥친 일이 자신의 죽음, 자신의 장례식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이 말이다.

한나 아렌트는 여기서 ‘어리석음’과는 구별되는 ‘순전한 무사유’를 보며, 악과 사유할 능력을 잃어버린 무사유 사이의 이상한 연관성이야말로 아이히만 재판에서 끌어내어야 할 역사적 교훈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유할 능력’이 인간 내부의 또 다른 영역인 자아와의 대화이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며, 말의 능력으로서 인간의 인간다움이 여기에 기초한다는 사실은 굳이 어려운 논의를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닐 테다.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년)의 부제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인데, 흔히 ‘평범성’으로 번역되는 ‘banality’가 진부한 말과 생각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것은 기억해둘 만한 지점인 것 같다.

얼마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교회의 영결식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증오범죄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도사를 이어가다 문득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대통령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말과 함께 노래를 시작했고, 탄성과 웅성거림 속에서 일어난 참석자들은 흑인 노예무역에 가담했다 회개한 한 영국 사제가 신의 은총을 찬미한 그 노래를 함께 불렀다. 감동적인 호응은 대통령이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인터넷에는 동영상과 함께 “이번 주 내내 저는 은총에 대해 생각했습니다”로 시작하는 추도사가 소개되어 있다.

그 말들에서 나는 슬픔에 슬픔을 포개려는 한 개인의 간절한 생각의 시간과 흔적을 읽었다. 물론 그 추도사는 인종문제에 대한 뛰어난 정치적 호소이기도 했다. 현장의 한 참석자는 “그가 미국 대통령이어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규격화된 관제 언어의 복창에 익숙한 귀에는 놀랍도록 신선한 충격이었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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