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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성매매와 간통, 무엇이 더 나쁜가

입력
2016.0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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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수자 추정 개인정보 대량 공개

성매매보다 간통이 비난가능성 커도

법과 현실 따로 노는 위선의 딜레마

88올림픽 즈음 개봉됐던 영화 ‘매춘’에서 배우 나영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결혼은 또 다른 매춘”이라고 외쳤던 기억이 난다. 사랑보다는 남자의 재력이나 여자의 미모 수준, 양측 집안의 형편 등이 적절히 만나는 접점에서 결혼이 이루어지는 모양새가 매춘과 다를 바 없다는 다소 극단적 얘기를 하려 했던 것 같다. 영국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저서 <여권의 옹호>에서 “결혼은 합법적 매춘”이라는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1700년대 그의 뜻은 남녀평등을 주장하려는 차원이었지만 결혼의 음습한 속성을 까발렸던 최초의 발언이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 만하다. 실제로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 돈을 주고 신부를 사는 풍습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말도 아닌 듯하다.

매춘과 불륜 이야기는 늘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얼마 전 제주도에 폭설이 내려서 여행객들이 오도 가도 못하면서 회사 출장을 핑계로 ‘불륜 여행’을 즐겼던 사람들이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촌극 수준이다. 최근 있었던 성매매 장부 파일 공개 사건은 한결 심각해 보인다. 정보 에이전시 업체인‘라이언 앤 폭스’가 두 차례 폭로를 통해 성 매수자로 추정되는 개인정보 22만여건을 공개하면서 경찰관ㆍ변호사ㆍ의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신상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실제로 이 파일은 경찰에 넘겨졌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 파일을 작성한 성 매매업자나 유흥업소는 채팅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모으고 이를 근거로 인터넷상에서 정보 검색을 해 직업 등 상세한 정보를 추가한 방대한 정보를 축적해 유흥업소에 유통시킨 것이다. ‘빅 데이터’가 이런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렇다고 이 파일을 근거로 성매매 여부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직접 현장을 덮치거나 신용카드 사용내역, 성 매도자의 진술 등 복합적 증거가 있어야 혐의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 신상 정보도 그 파일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퇴근 무렵 음란ㆍ퇴폐 업소에서 문자 메시지가 자주 날아온다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특히 최근 몇 년 이내에 그런 업소를 출입했다거나 신용카드라도 긁은 적이 있다면 긴장할 수 있겠다. 2011년 ‘국회 앞 안마방 전표 사건’으로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근거로 300여명이 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를 했을 경우 형사처벌은 물론, 신상정보 공개 등 사회적 매장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지난해 2월 간통죄가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불륜을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성매매나 간통이나 둘 다 도덕적으로 매도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성매매와 간통 중 어느 것이 더 나쁠까’라는 부질없는 의문이 든다.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들어보니 반응이 다양했다. 그래도 성매매보다는 간통이 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많았다. 성매매는 일회성이지만, 간통은 이혼 등 가정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의 아랫도리를 국가가 관리할 이유가 있나, 법이 도덕의 문제에 주제넘게 나서는 것”이라는 반응도 눈길을 끌었다. 한 여성은 “성매매하는 놈은 더러운 놈이고 간통하는 놈은 나쁜 놈”이라며 “그래도 남편의 성매매는 혼쭐을 내고 견디겠지만, 간통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유전유죄 무전무죄(有錢有罪 無錢無罪)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기발한 분석도 나왔다.

성매매보다는 간통이 더 문제라는 의견이 많지만 발각되었을 때의 결과는 성매매가 더 처참하다. 그렇다고 성매매를 법으로 금지한 이후 성매매가 줄어든 것도 아니고,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변질했다. 불륜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금에 와서 성매매를 합법화할 수도, 간통죄를 부활시킬 수도 없다. 법과 현실이 따로 놀면서 우리 사회가 위선의 딜레마에 빠진듯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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