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오빠·자본주의·시간제 강사… 100년 뒤엔 없는 말?

알림

오빠·자본주의·시간제 강사… 100년 뒤엔 없는 말?

입력
2014.11.21 04:40
0 0

시인ㆍ소설가ㆍ사진가 등 작가 11명

180단어 선정 이유 풀어내

테이크아웃 용기ㆍ우체통 등도 목록에

작가 11인이 2100년 사라질 단어 180개를 꼽았다. 3D 안경 사진은 사진작가 이차령씨가, 아래 그림은 만화가 조경규씨가 그린 것이다. 유어마인드 제공
작가 11인이 2100년 사라질 단어 180개를 꼽았다. 3D 안경 사진은 사진작가 이차령씨가, 아래 그림은 만화가 조경규씨가 그린 것이다. 유어마인드 제공

토익, 간척지, 3D 안경, 우표, 시간제 강사, 비디오방, 뽕, 자본주의, CCTV, 신문.

위 단어들 중 백 년 후에도 활발히 통용될 것은 몇 개나 될까. ‘토익’은 백 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겠고 ‘우표’는 이미 사라질 준비를 마친 듯 하다. ‘비디오방’은 그 이름과 쓰임새의 괴리가 점점 커져 백 년 후 인류에게 이 단어를 설명하려면 한숨 한번 내쉬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열 한 명의 작가가 22세기에 사라질 단어 180개를 선정한 책 ‘22세기 사어수집가’(유어마인드)가 나왔다. 소설가 한유주 김지현, 시인 이제니 황인찬, 사진작가 이윤호 이차령 이강혁, 만화가 조경규, 큐레이터 현시원, 논객 노정태, 음악가 김목인 등이 참여했다.

황인찬 시인은 ‘오빠’라는 단어의 사멸을 예견했다. 그가 22세기 한국인들에게 들려주는‘오빠’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는 연하의 여성이 혈연관계가 아닌 연상의 남성과 대화할 때, 이 말을 대화에 섞어 쓰면 대화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용이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오빠는) 대화 주체 간의 위계를 암시하며 또한 그것을 통해 관계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능을 수행한다.”이처럼 강력한 효과와 기능에도 불구하고 오빠는 ‘아빠’란 단어에 흡수되고 만다. ‘오빠가 아빠 된다’는 말이 결국 실현되고 말았다는 게 시인의 주장이다.

음악가 김목인씨는 백 년 후로 날아가 ‘당일 배송’이란 반인권적 단어의 죽음을 회상한다. “21세기 초 유통산업의 과잉경쟁”이 초래한 ‘당일 배송’은 분노한 운송 노동자들이 일으킨 유혈 혁명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오늘날, 유혈 배송 혁명을 경험한 국가들에서는 이런 반인권적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몇몇 국가들에서는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소설가 김지현씨는 21세기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인 ‘사이코패스’가 사라진다고 보았다. 단어 자체의 문제보다는 그것을 오남용한 사람들 때문이다. “21세기 사람들은 악당을 다시 중세와 같은 순수 악의 영역으로 되돌리되, 그러한 선과 악의 대비를 통해 공동체의 도덕을 재현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공동체의 도덕에서 완전히 이탈해버린 타자를 악으로 규정했다.”

만화가와 사진작가들은 각각 그림과 사진으로 글을 대신했다. 조경규씨는 우체통과 음식물 쓰레기봉투, 테이크아웃 용기 등을 특유의 그림체로 그려냈다. 그는 테이크아웃 용기가 앉아서 커피를 마실 10분의 여유도 없는 세태와 함께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렸다고 설명했다.

가상일 망정 언어의 생몰을 지켜보는 건 아찔한 쾌감을 자아낸다. 단어 한 개가 사라질 때마다 거기 달라 붙은 끈적한 욕망과 분노와 무시도 함께 소멸하는 듯한 착각 때문이다. ‘시간제 강사’라는 단어를 “한때 존재하였던 슬픈 전설”(황인찬)이라고 기록하는 것이, 시대에 눈 돌리지 않으면서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책을 기획한 유어마인드 대표 이로씨는 사라지는 단어에 집중하는 작가들의 행위를 “모든 것이 하강하는 때에 태어난 사람들이 가진 어떤 천성”으로 설명한다. “21세기를 채 넘기지 못할 운명의 단어들이 ‘쓸모 없음의 세계’를 향해 쓰러져 갈 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사어, 그 죽은 말을 바라보게 될까.”

황수현기자 so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