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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갑질 사건, 인권 진보에 대한 믿음 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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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갑질 사건, 인권 진보에 대한 믿음 깨져"

입력
2015.02.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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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ㆍ권력 쥐고 사회시스템 이끄는

주류에게 각성 촉구

건강한 시민 목소리 터져 나와야"

“세계인권선언 제정을 주도한 것은 유엔과 미국 등 전승국들로 알려져 있지만 비정부기구, 중소국, 비서구권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모든 사람(all man)이라는 표현을 ‘all human beings’으로 바꾼 것은 인도 대표였고, 식민지배 주민의 권리를 각인시킨 건 이집트 대표였다. ”

한국의 대표적 인권학자 조효제(54)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가 신간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교양인)를 냈다. 영국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세계인권선언 등 인권 문헌의 역사와 숨은 공로자들을 소개하며 비주류적 시각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 그는 돈의 논리에 압도당한 한국 사회의 절망적 상황을 파고든다.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가 창고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해야 할 때, 공중파에서 조선족의 말투를 우스개로 만들어 조롱할 때, 치매 노인이 기저귀 한 장으로 하루 종일 버텨야 할 때 인간 존엄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말로 추락한다.”

23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공적 의식도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갑질’ 사건이 줄을 있고 있다”며 “1대 99의 극단적 자본주의 상황에서 모든 가치가 상업적 이윤추구 및 경쟁 논리에 압도된 탓”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모두가 절박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다 보니 단기적 자기이익에만 충실하게 됐다”며 “내가 주민이고 손님이니 경비원이나 직원을 부릴 수 있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계속 이렇게 극악하게 행동했을 때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난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것이 모멸감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을 통해 “빈곤에 짓눌린 세 모녀가 머리맡에 집세가 든 봉투와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만 봐도 사람은 자살이라는 마지막 길을 가면서도 최소한의 자존과 위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상대적 존엄의 박탈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너무나 쉽게 남을 모멸하는 현 상황에서 반드시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다.

조 교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와 양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인권 담론이 개입해도 달라질 것이 거의 없다”며 “병을 그대로 두고 응급약이나 진통제만 처방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대안으로 언급하는 것이 압핀이론이다. 인권 전문가들의 활동인 핀의 뾰족한 끝이 제대로 꽂히려면, 올바른 시민성이 평평한 바닥이 돼 핀을 힘있게 눌러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갑질하지 말고 ▦차별 항의에 힘을 보태고 ▦정치인의 언설을 회의적으로 보는 안목을 갖추는 등의 작은 노력이 모여 상식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돈, 권력을 쥐고 사회시스템을 이끄는 주류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건강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인간성 회복의 숨은 공로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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