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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의 자성 촉구한 이태원 사건 유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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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의 자성 촉구한 이태원 사건 유죄 판결

입력
2016.01.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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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전 이태원 살인사건의 용의자 아더 패터슨에게 29일 1심 판결에서 법정 상한인 징역20년이 선고됐다. 가족을 잃고도 범인을 단죄하지 못해 울분을 삭여야 했던 유족들이 뒤늦게라도 한을 풀 실마리를 찾았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패터슨은 실로 오랜 만에 죄값을 치르게 됐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가장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검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이날 “패터슨이 피해자를 찌르는 것을 보았다는 공범 에드워드 리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며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직후 패터슨은 온몸에 피가 묻어 화장실에서 씻고 옷도 갈아 있었다”며 “리가 피해자를 찔렀다는 패터슨의 진술은 객관적 증거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리를 공범으로 인정했지만 그는 앞서 1998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바 있어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태원 살인 사건은 1997년 4월3일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22세 대학생 조중필씨가 살해된 사건이다. 현장에는 미국 국적의 17세 동갑내기 친구 패터슨과 리가 있었다. 당시 미군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했고 경찰은 둘을 공동정범으로 보았다. 그러나 검찰은 조씨보다 키가 크고 힘이 센 리를 범인이라 보고 살인죄로 기소했다. 잘못된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 서울고법이 최종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의 부실수사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검찰의 더욱 큰 잘못은 패터슨의 출국정지 연장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리가 범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패터슨을 범인으로 봐야 했다. 증거인멸죄 등으로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패터슨은 담당 검사가 출국정지를 연장하지 않자 재빨리 미국으로 달아났다. 이후 패터슨이 미국에서 체포되지 않았거나 로스앤젤레스연방법원이 한국 송환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그를 한국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법무부도 무성의했다. 미국으로 도망친 패터슨이 현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도 두 달 동안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지 않았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제작 등 민간 차원의 진실 규명 요구가 없었어도 검찰과 법무부가 움직였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번 판결은 범인은 언젠가는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교훈을 준다. 그러나 검찰의 판단과 조치가 더 정확하고 신속했더라면 단죄도 그만큼 빨랐을 것이고 유족들도 통한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자성과 분발의 계기로 삼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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