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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햇빛

입력
2014.12.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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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졌다. 그러다보니 반짝 햇빛이 나면 기분 좋아진다. 반갑기 그지없고 새삼스레 고맙다. 뼈 곯아가며 낸 서민들의 세금이 홍수처럼 줄줄 새나가는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사는 게 하도 춥다보니 나를 포근하게 해주는 유일한 게 햇빛이다. 믿을 게 햇빛밖에 없는 이가 나 말고도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모든 종족들에게 태양숭배 사상이 있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그게 뜨면 천지가 밝아지고 생물은 활동을 시작한다. 광합성 하며 식물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우리는 그것을 먹으며 살아왔다.

나는 선크림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한 여름 바다에서 뛰어놀 때 무언가를 한 번도 발라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물론 너무 타면 쓰라렸고 나중에 껍질이 벗겨졌다. 하지만 이렇게 껍질이 벗겨질 정도로 선탠을 하면 겨울에 감기에 안 걸리고 건강하게 넘어간다는 말이 그 시절에 있었다. 아마 의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있겠지만 (특히 자외선에 대해 워낙 많이들 떠들기 때문에) 어쨌든 우리 인류는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북미 원주민들의 태양숭배 의식 중에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게 있었다. 태양열은 혈압과 호흡을 안정시켜주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몸의 기능을 활성화 하는 능력이 있다. 대낮은 너무 뜨겁고 밝으므로 그들은 일몰 일출 때 그 행위를 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리는 아침이나 일몰 때 해를 바라보는 버릇이 있다. 아름답고 장엄해서 그러기도 하지만 에너지원에 대한 몸의 본능적인 반응으로도 보인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의사와 병원이 많아지고 의료기술도 발전했는데 왜 환자들은 더 늘어났는가를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돈을 대고 연구를 하게 한 적이 있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형식적인 연구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난다. 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192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거였다. 주로 음식 섭취와 환경문제 때문에 내린 결론이지만 그 시절엔 선크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섬에 찾아오는 관광객 중 여럿은 몇 겹으로 된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마치 인류 멸망 직전에나 쓰고 다닐만한 것으로 보이고 어떤 때는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같기도 하다. 햇살이 강하면 그나마 이해된다. 흐린 날도 그렇다. 더군다나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라 공기가 깨끗하다. 어떤 장치로도 못 만드는 청정 기체이다. 굳이 이런 곳에 와서도 이렇게 괴상한 마스크를 쓰는 이유가 뭘까,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내 이모는 육지에서 찾아온 친구들을 만나고 온 다음 혼자 울었다. 애틋한 우정이 원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짐작이 틀렸다. 육지 나간 친구들은 저렇게 하얗고 반질반질한데 자신은 섬에서 일만 하다 보니 얼굴이 타서 늙어버렸다는 신세 한탄이었던 것이다.

아마 그들은 흉악범 만난 것처럼 햇빛을 피해 다니고 잘한다는 데 찾아가 마사지 받고 좋다고 소문난 화장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돈도 제법 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노력 끝에 허여멀건 한 얼굴이 된 다음 고향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울렸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까맣게 탄 친구를 보면서 내심 흡족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 말고 더 있는가. 더 있어야 하는데 딱히 없다.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그 보람이 고작 친구를 슬프게 만드는 것 밖에 없다니.

이모는 지금도 건강하고 씩씩하다.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쯤 이런 저런 알약을 삼키면서 물리치료실에서 와이어에 관절을 맡기고 있을 것이다. 생명체 힘의 원천인 햇빛을 앞으로도 계속 혐오하게 되면 머잖아 지하인간이 될 수도 있다. 두더지나 지렁이처럼 말이다.

햇빛도 싫고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도 거부하는 이상한 사람들. 이거 좀 징그럽다. 하긴 인류사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오래 산 경우가 없었다. 평균 수명이 갑자기 올라가버린 것을 지금 인류의 특징이나 특혜로 친다면 삶의 경험이 세상 부조리를 간파하고 방법을 제시하는 지혜로 나가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거울만 보는 나르시시스트들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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