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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집값이 또 오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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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집값이 또 오르는 이유

입력
2018.08.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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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경기 파주시의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지난 16일 경기 파주시의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박원순 시장 말 한 마디에 용산ㆍ마포ㆍ여의도 아파트가 최소 1억원씩 모두 올랐어요. 그런데도 매물이 없네요.”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공인중개사가 최근 전해준 시황이다. 실제로 이곳 전용 68㎡ 아파트 호가는 8억원까지 형성되고 있다. 1년 전 실거래가는 5억6,000만원이었던 곳이다.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광진구 자양동의 전용 72㎡ 아파트는 같은 기간 6억7,000만원에서 8억7,000만원으로 뛰었다. 중구 신당동의 전용 57㎡ 아파트 실거래가도 4억9,000만원에서 6억7,500만원으로 상승했다.

세 곳 모두 강남3구가 아닌 곳이고 새로 지은 단지도 아니다. 집값 상승이 특정 지역이나 신규 아파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란 얘기다.

이는 1년 전 정부가 8ㆍ2 대책을 발표하며 장담했던 상황과는 정반대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뒤 “다주택자들은 어서 집을 팔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8ㆍ2 대책은 투기과열지구ㆍ투기지역 부활, 재건축 조합원 분양권 전매금지, 다주택 양도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을 망라한 초강력 카드였다. 그러나 집값은 떨어지긴커녕 더 올랐다. 더구나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의 아파트값 상승세가 더 높았다. ‘정부가 투기지역으로 지정한 곳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다급해진 정부는 세무조사까지 동원했지만 흐름을 바꾸진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먼저 시중에 풀린 돈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간과됐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8 한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의 부자는 지난해말 기준 27만8,000명으로, 전년보다 3만6,000명이나 증가했다. 부자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는 얘기다. 저금리에 갈 곳 없는 돈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기 마련이다. 금리를 올리지 않은 채 집값을 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둘째 정부의 부동산 규제는 매물을 늘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 가격을 낮추려면 수요는 줄이고 공급은 늘려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갖고 있으면 손해를 볼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그래야 매물이 더 늘어난다. 그러나 8ㆍ2대책과 후속책은 모두 매물 실종만 부추겼다. 8ㆍ2 대책을 서둘러 발표하는 과정에서 다주택자들이 양도세 중과 전 부동산을 팔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두지 않은 것은 정부가 디테일에 얼마나 약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임대사업자등록을 늘리겠다며 8년 임대시 각종 혜택을 준 것도 사실상 8년간 매물이 잠기도록 만들 공산이 크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고 앞으로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면 집값은 오르는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선수들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엇박자도 초대형 참사에 한몫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잠실 5단지 재건축을 승인한 데 이어 박 시장이 최근 용산ㆍ여의도 통합 개발 구상을 밝힌 것은 시장을 자극하고 집값 폭등을 불렀다. 한쪽에선 불을 끄겠다고 칼춤을 추는데 다른 한쪽에선 기름을 부은 셈이다.

강남3구도 아닌데 집값이 1년에 2억원씩 뛰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물론 중산층도 삶에 회의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는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는다. 그러나 경제는 당위성이나 도덕률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장을 돌아가게 하는 것은 이기심과 욕망이다. 정책을 시행할 땐 시장 참여자의 이런 이기심과 욕망이 어디로 튈 지 정확하게 내다볼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너무 무지해 보인다. 이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현 경제팀엔 실물 경제와 시장의 생리를 이해하고 디테일에도 강한 프로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시장을 모르고 경제 부총리는 정치만 하는데 집값이 잡히겠나,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박일근 경제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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