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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잣대인데… GDP 숭배 왜 끝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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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잣대인데… GDP 숭배 왜 끝이 없을까

입력
2016.01.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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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의 정치학

로렌조 피오라몬티 지음ㆍ김현우 옮김

후마니타스 발행ㆍ239쪽ㆍ1만5,000원

어느덧 시대의 화두는 ‘2만불 시대’에서 ‘2만불의 덫’으로 넘어갔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간다고, 우리 살림살이가 나아질까. ‘GDP의 정치학’은 이런 의문 속에서 GDP의 기원, 성장, 논란을 추적한 책이다.

GDP는 1929년 대공황, 1930년대 루스벨트 집권기, 1940년대 2차대전을 거치면서 나고 자랐다. 특히 2차대전 당시 GDP의 활약은 극적이었다. 미국 내 GDP 전문가들은 GDP에 관련된 각종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국내 민간수요를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최대의 군수물자를 생산해낼 수 있는 전환 프로그램 ‘빅토리’를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유럽 전선에 미국이 직접 군사력을 투입하는 것은 1943년 이후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 내 정치참모들과 군부 내 전략가들의 반발이 극심했으나 빅토리 프로그램은 나치군에게도, 미국 내 반대자들에게도 승리했다. “영광을 누린 건 맨해튼 프로젝트(원폭개발)였으나 기술적 성취로는 빅토리 프로젝트도 그에 못지 않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GDP에 대한 경고는 날 때부터 존재했다. 바로 GDP 영역을 개척한 사이먼 쿠츠네츠도 그 대열의 한 사람이다. 책에서는 경제학자로 나오지만 원래 쿠츠네츠는 수학자였다. 엄밀한 논리를 따지는 과학은 늘 전문가들의 엄격한 해석과 정치인과 대중의 광범위한 적용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법. 쿠츠네츠는 GDP에 대한 열광을 불편하게 여겼다. “한 나라의 역사 속에서 일시적일 수 밖에 없는 위기를 통해 정당화되는 이런 관점을 공적 활동의 일반적 운영에까지 확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 사회의 높은 성장률이 어느 정도까지 지속되는 게 바람직한가 여부는 그 사회가 기꺼이 감내하고자 하는 비용 수준과 일치한다”, “성장의 대가, 비용이 무엇인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전체 성장률이 1년에 몇 퍼센트 상승해야 한다는 식으로 몰아대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란 말들을 기회가 닿는 대로 남겼다. 쿠츠네츠는 GDP에 대한 신앙이 환경파괴, 사회정책과 정치의 무력화, 껍데기만 남는 민주주의, 번아웃 신드롬 등 여러 문제로 치달을 것이라 이미 예견하고 경고한 셈이다.

그럼에도 2차대전 때의 성공 경험, 이후 냉전으로 인한 체제 경쟁으로 GDP 숭배는 이어졌고 쿠츠네츠의 이 같은 충고는 잊혀졌다. 저자가 GDP를 “전쟁기계”이자 “프랑켄슈타인 괴물”이라 부르는 이유다.

문제는 그렇다면 대안이 뭐냐는 것이다. 저자는 책 후반부에 여러 대안적 움직임들을 거론하지만, 솔직히 문제의식에 비해 딱히 와 닿는 건 없다. 지금으로선 GDP의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의 요청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장 폴 피투시의 결론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들은 “GDP는 당신이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어떤 하나의 눈금판”이라 결론지었다. 이어 “이성적 운전자라면 (속도뿐 아니라)연료는 얼마나 남았는지, 얼마나 더 갈 수 있는지, 전체 주행거리를 얼마나 되는지” 등도 궁금하게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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