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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자신과 마주해야 할 대통령

입력
2017.02.06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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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왕(吳王) 합려(闔閭)를 중국 춘추시대의 패자(覇者)로 만든 오자서(伍子胥)는 합려와 뜻을 이룬 후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리한 복수극을 벌이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도행역시(倒行逆施)는 이에서 유래한 고사(故事)로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행하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말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상상 그 이상의’ 농단과 미증유의 권력사유화의 종착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최순실과 그의 측근들의 사익탐닉의 공범이자 뇌물죄 피의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은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사적 소유로 인식했다. 대통령과 최순실 등은 대한민국을 자신들의 클럽 수준으로 농락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거부했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안보와 공무상 비밀을 빙자한 허구 앞에 속절없이 무릎을 꿇었다. 국기문란으로 안보를 위태롭게 하고, 국가기밀을 누설한 장본인이 보안을 이유로 정당한 국가권력이 발부한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모순과 역리(逆理)는 시민을 좌절케 하고, 국민주권을 우롱한다. 또 하나의 탄핵사유가 추가된 셈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에 불이익을 준 ‘블랙리스트’, 권위주의 시대의 일상화된 그 강요된 획일의 부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탄핵심판의 피청구인인 박 대통령은 일말의 반성과 성찰도 없이, 변명과 위선으로 여론과 상황의 반전을 노리고 있다. 결정적 혐의들이 물증과 진술에 의하여 사실로 입증되고 있는데도 ‘거짓말로 쌓아 올린 거대한 산’이며 ‘완전히 엮였다’는 말로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역사를 거스르고 정의와 불의의 구분에 눈감은 무리들은 탄핵무효와 특검 해체를 사교(邪敎)집단의 구호처럼 읊조린다.

증거인멸 시도와 끊임없는 사술(詐術)로 일관하는 농단의 무리는 법은 어떤 존재인지를 되묻게 한다. ‘법치’는 인권의 보루라는 법실증주의와 증거주의의 이름으로 무력화하고, 보편적 상식과 양심에 기초하지 않는 인식은 종종 반역사적 폭력성을 내포한다. 법의 최종판단이 있기 전에는 무죄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내의 영역을 넘는 의혹과 혐의들 앞에서 정의와 법과의 모순을 새삼 일깨운다.

특검의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청와대는 ‘법리’를 벗어난 논리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주 헌재에 제출한 ‘탄핵소추 사유에 대한 입장문’을 통하여 또 한 번 모든 의혹과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지난 달 25일, ‘보수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특검 수사와 의혹에 대해 “기획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음모설을 제기했던 인식의 연장이다. 실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탄핵심판을 최대한 늦추려는 술수인지 알 수 없으나, 탄핵심판이 임박할수록 강경 보수층의 동원과 결집을 통해 탄핵인용을 저지하려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으나 대통령 신분이다. 대통령으로서 스스로 행한 헌법 위배 행동에 대해 아직도 인지하지 못한다고 보기 어렵다. 문화계 인사 외에는 최순실의 추천을 받지 않았다는 말도 거짓으로 밝혀졌다.

국정농단이 초래한 사회적 허무와 무력감, 지향의 상실로 한국사회는 혼돈 그 자체를 경험하고 있다. 아노미(anomie)란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촛불민심에 가위눌렸던 수구세력은 냉전시대의 유물인 반공주의 망령을 끄집어내어 진영 대결구도로 사태를 몰아가고 있다. 전대미문의 민주주의 유린의 본질에 눈을 감고, ‘역사적 사태’의 전말은 외면한다. 시대를 거스르는 반역사적·몰지성적 집단 히스테리인 ‘반동’의 단초를 보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역사와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면 그가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검 조사에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만이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에 대한 마지막 예의이자 도리며, 최소한의 품격을 지키는 길이다. 대통령은 정녕 ‘도행역시’의 우를 범하려고 하는가. 역사는 ‘도행역시’의 최후를 교훈으로 전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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