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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영혼의 성장통이라 여기면 고통조차 감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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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영혼의 성장통이라 여기면 고통조차 감사하죠"

입력
2014.11.2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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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등 국내외 11곳 돌며

천주교 신자로서 신앙 고백

"먼저 극복한 저의 체험이

힘든 이에게 위안이 됐으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는 기행문이면서 천주교 신자로서 작가의 신앙고백이다. 작가는 “고통에도 신의 의도가 있다는 걸 인정한 이후 삶이 달라졌다”며 “먼저 힘들었기에 먼저 진리를 찾은 나의 체험이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는 기행문이면서 천주교 신자로서 작가의 신앙고백이다. 작가는 “고통에도 신의 의도가 있다는 걸 인정한 이후 삶이 달라졌다”며 “먼저 힘들었기에 먼저 진리를 찾은 나의 체험이 독자들에게 위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자신의 상처를 날 것 그대로 드러내놓은 사람을 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들려줄 얘기가 상대를 아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경고까지 해둔 터라면 더더욱. 등을 돌려도 된다며 이 화자는 마음을 비운다. 그러고도 듣기를 작정한 이에게 공지영은 자신이 밑바닥을 어떻게 쳤는지, 그 고통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처절하게 구원을 간구했는지 펼쳐 보인다.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없다는 듯 자신을 내려놓는다, 툭.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분도출판사 발행)는 그래서 첫 장부터 독자를 무장해제시키는 책이다.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보편적인 이 이야기가 첫 번째 책과는 깊이가 다른 이유다. 경북 칠곡군의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수도원 11곳을 2011~2013년 돌며 썼다. 1권은 2001년에 한 수도원 여행기다. 형식은 1권과 같지만, 그 알맹이를 작가는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가득 채웠다. 그것은 어쩌면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헤맨 사람의 여행기이거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한 여자의 연애담이다.

이런 작정을 왜 하게 됐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26일 서울 정동에서 그를 만났다. 하기는 공지영은 드러냄에 거리낌이 없는 작가 중 하나다. 첫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을 시작으로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까지 대중은 그의 직접화법이 어색하지 않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어느 작가나 완전한 허구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진 않겠지만, 어쩐지 공지영의 소설은 70%쯤은 자신의 이야기일 것 같다는 추측을 독자들에게 준다.

“저는 늘 그랬어요. 소설에도 제 이야기가 녹아있고, ‘수도원 기행’ 첫 번째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썼죠.”

5년 전 나온 개정판의 서문 이야기다. 대학 2학년이던 1982년 이후 신앙생활을 쉬는 냉담신자로 18년을 살아온 그가 어떻게 하느님과 다시 만났는지에 대해 서술했다. 세 번째 결혼생활이 파국을 맞게 된 순간, 피투성이 맨발에 너덜너덜한 정신으로 신을 찾아 헤매던 모습이다. 절망의 나락에 떨어지며 부르짖던 그 때에 믿을 수 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 여기 있다. 얘야, 난 단 한번도 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이 서문 그대로를 다시 첫머리에 옮겼다. ‘수도원 기행 2’는 그 이후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시작을 해야 했을 것이다. 책에는 작가가 하느님과 주고 받은 대화, 성령의 예언, 자신도 모르는 언어로 터져 나온 영가 체험, 육체의 치유, 몸으로 느낀 성령 체험 등 도저히 본인이 믿지 않고는 못 배길 신과의 만남이 빼곡하다.

“사실 실제로는 쓴 것보다 더 많았어요. 수도원 기행 1권을 쓸 때도 이런 경험이 있었지만 쓰지 않았을 뿐이죠. 그땐 조금이라도 이성에 어긋나는 건 과감히 뺐어요. 잘못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칠 것 같은 걱정도 들었고요. 하지만 이제는 내 영혼에서 일어난 일을 써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지금 힘든 사람들에게 먼저 고통을 겪고 극복한 제가 위로와 힘을 주고 싶었어요.”

작가 공지영은 “마음이 힘들 때 수도원에 가면 참 좋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농축된 기도의 기운을 느끼게 돼서가 아닐까 그는 짐작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과 유럽의 수도원 11곳을 돌며 직접 수도원의 향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은 작가가 찍은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의 노을. 분도출판사 제공
작가 공지영은 “마음이 힘들 때 수도원에 가면 참 좋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농축된 기도의 기운을 느끼게 돼서가 아닐까 그는 짐작했다.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과 유럽의 수도원 11곳을 돌며 직접 수도원의 향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은 작가가 찍은 독일 뮌스터슈바르차흐 수도원의 노을. 분도출판사 제공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느님을 만난 그 이후’다. “영원과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나니 현실이 행복해요. 고통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져요. 물론 지금도 힘든 일을 겪지만 이 고통이 내 영혼을 위한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조차 감사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작가는 열심히 기도했다. 이혼하지 않게 해 달라고, 행복한 가정을 달라고, 아이들이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하느님은 하나도 주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서운했어요. 그런데 제가 겪을 뻔한 큰 불도 막으려고만 하면 막으시는 분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뒀다면 그건 그 분이 허락하신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번 책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건네는 위로가 나온다. “수 시간 난산 끝에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에게도 고통이었을 그 몇 시간이 아니라 태어난 기쁨만 생각하잖아요. 하늘나라가 있다면, 우리가 죽는 것도 하늘나라 쪽에서 보면 탄생인 거죠. 죽음도 순산이든 난산이든 그 끝에 하늘나라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고통이 덜해지지 않을까요?” 작가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

고통, 아니 고통을 겪게 하는 절대자의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이후 작가의 삶은 달라졌다. “마음의 무게 추가 저 아래 단전 밑으로 내려간 기분이에요. 어떤 일이 닥쳐도 쉽게 흔들리지 않죠. 대신 모든 게 감사해요.” 26년 간 하루에 세 갑씩 피워대던 담배를 어느 신부의 남모를 기도로 끊었고, 올해부터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새벽 미사에 나가며, 비행기만 타면 생기던 공황장애에 가까운 공포증도 사라졌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이기에 천 년이 하루 같을 수는 없으나 하루가 천 년 같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기원의 힘을 믿는 건 인간의 본성이잖아요. 종교가 없다 하더라도 그래서 이 책이 위안이 되리라 믿어요. 고통 받는 자란 결국 진실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니까요. 먼저 고통 받았던 이의 체험이 위로가 될 겁니다.”

그래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는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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