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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못 벗는 대한민국

입력
2015.06.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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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 1시부터 3시까지 명동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 사진 100여장을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19일 낮 1시부터 3시까지 명동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 사진 100여장을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는

생존 위한 자가 처방이자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

메르스 진정한 종식위해선

과학적인 분석만큼

국민의 신뢰 회복이 필수

거리를 메운 마스크 행렬 사이로 불안한 눈빛이 겹치듯 이어진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MERS) 사태 한 달을 겪는 동안 ‘국가가 나와 내 가족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은 미련 없이 버렸다. 메르스에 대한 불확실성과 그로 인해 증폭된 공포심, ‘낙타고기’운운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입과 코를 가린 마스크는 스스로 알아서 생존하기 위한 자가 처방이자 무능한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지난 한 달이 일년처럼 느껴져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주부 A씨는 메르스 확산 초기부터 학부모 채팅방을 중심으로 퍼진 루머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 왔다. 매스컴에 나온 환자가 몇 동 몇 호에 산다거나 그 집 아이가 어느 학교와 학원을 다닌다는 식의‘속보’는 대부분 헛소문으로 드러났지만, 막상 코 앞에 환자가 산다는 말을 들고나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정보 공개가 제대로 안 되니까 이 소문 저 소문에 귀를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A씨는 한 숨을 내쉬었다.

사태는 정부가 키웠고 대가는 국민이 치르고 있다. 안이한 대응으로 조기 진압의 기회를 날린 보건 당국은 확진자 수가 50명을 넘어설 때까지 병원 이름 숨기기에 급급했고 정확한 정보 대신 괴담과 루머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사이 국민들은 일상 생활의 패턴마저 바꿔야 했다. 사람 많은 곳은 무조건 피하고 병문안이나 조문은 물론 회식과 모임도 자제하다 보니 소비도 크게 위축됐다. 상인들은 세월호의 기억을 떠올리며 애를 태우고 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불안감은 다른 사람을 ‘언제든지 나를 감염 시킬 수 있는 위험인자’로 여기고 경계하거나 거부감을 표출하게 만들기도 한다. 메르스 최 전선에 나선 의료진 자녀의 등교를 제한하는가 하면 지하철 옆 자리에서 기침 소리만 들려도 슬그머니 자리를 옮긴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주부 B씨는 며칠 전 초등학생 딸 아이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아직 확진 환자가 없는 지역이지만 섣불리 병원을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무작정 학교를 쉬자니 주위의 시선이 두려웠다. 자가격리 대상자라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혹시라도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다행히 반나절 휴식을 취하고 나서 두통과 미열은 사라졌지만 질병 자체보다 사회적 관계의 상실이나 낙인이 주는 공포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생물학적 퇴치 대상에 불과했던 메르스 바이러스는 한 달 만에 국가적 리더십, 정부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사회적 혼란 등이 뒤엉킨 난제가 되어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23일 현재 전국의 메르스 확진 환자는 175명, 사망자 27명, 격리 경험자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요 며칠 환자 증가세가 주춤하고는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메르스의 진정한 종식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관리와 철저한 조치만큼이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러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염된 그 무엇을 퇴치하는 능력, 과연 정부가 보여줄 수 있을지 마스크 너머 눈빛들이 지켜보고 있다.

19일 낮 1시부터 3시까지 명동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 사진 100여장을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19일 낮 1시부터 3시까지 명동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행인 사진 100여장을 한 장의 이미지로 표현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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