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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등록 : 2018.05.09 10:22
수정 : 2018.05.09 11:02

[정재정의 독사만필(讀史漫筆)] 정지용, 윤동주, 도시샤대학 ②

등록 : 2018.05.09 10:22
수정 : 2018.05.09 11:02

윤동주는 1943년 7월 14일 교토에서 사상탄압 전문 특별고등경찰 형사에게 체포 당해 시모가모(下鴨) 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이었다. 송몽규가 중심이고, 윤동주와 고희욱은 동조자였다. 백인준, 마츠야마, 마츠바라, 장성언 등도 함께 체포되었으나 검사국으로 넘겨진 사람은 송몽규, 윤동주, 고희욱이고, 기소되어 실형을 언도 받아 복역한 사람은 송몽규와 윤동주뿐이었다. 둘은 북간도 용정의 윤동주 집에서 함께 자란 고종사촌이었다. 윤동주가 도쿄의 릿쿄(立敎)대에 입학해 한 학기가 지난 1942년 10월 1일 도시샤(同志社)대 문학부 문화학과 영어영문학 전공(選科ㆍ선과)으로 옮긴 것은 교토제국대에 송몽규가 재학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윤동주는 교토에 간 지 10개월 만에 일제의 마수에 걸렸다.

윤동주는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미결구류일수 120일을 산입한 징역 2년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후쿠오카형무소는 일본형무소 중에서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데다가, 주로 독립운동 관계자를 수용하여 악명이 높았다. 윤동주는 독방에서 투망 뜨기, 봉투 붙이기, 목장갑 코 꿰기 등 노역을 하는 한편, 한 달에 한 번 일본어로 엽서를 쓰거나 영일(英日) 대조 성서를 읽는 것으로 소일했다. 건장했던 그는 이름 모를 주사를 계속 맞은 끝에 1945년 2월 16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운명했다. 해방을 6개월, 만기 출소를 9개월 반 앞둔 시점이었다. 향년 27 남짓, 너무나 아까운 청춘 아닌가! 그가 맞은 주사액은 당시 규슈제국대에서 실험하고 있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였다는 설이 있다.

윤동주의 장례식은 1945년 3월 6일 용정 집 앞뜰에서 거행되었다. 아버지가 신경(新京, 장춘), 안동(安東, 단동)을 경유하여 후쿠오카까지 와서 시체를 인수하여 가져가 화장하고 납골했다. 용정중앙장로교회 문재린 목사가 장례를 주관하고, 연희전문학교 동인지 ‘문우’에 실린 윤동주의 시 ‘우물속의 자화상’ ‘새로운 길’을 낭독했다. 1945년 6월 14일 뒷동산 무덤 앞에 ‘시인윤동주지비(詩人尹東柱之碑)’를 세웠다.

윤동주의 하숙은 1936년에 목조로 지은 2층인데, 교토제국대와 도시샤대 학생 70명이 입주했다. 찾아가 보니, 지금은 그 자리에 철골조 건물인 교토예술단기대 교사가 서 있었다. 윤동주는 하숙에서 도시샤대까지 약 3.5㎞를 매일 걸어 다녔다. 가모가와(鴨川), 고쇼(御所), 상국사(相國寺) 등이 어우러진 아늑하고 유려한 길을 오가며 그는 넓고 깊은 시상에 잠겼다. 그가 정지용의 시 ‘압천(鴨川)’을 걸작이라고 평한 것을 보면 강변의 오리 한 마리, 풀 한 포기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것 같다.

도시샤대의 학사처리는 엉성하고 느슨했다. 한국이 해방되고 윤동주가 옥사한지 3년도 훨씬 지난 1948년 12월 24일 교수회의는 장기결석과 학비미납으로 그를 제명했다. 그렇지만 도시샤대는 그의 사후 50년 만에 캠퍼스의 가장 좋은 곳에 그의 ‘서시’를 새긴 시비를 세웠다. 수위가 시비를 찾는 방문객에게 나눠주는 ‘윤동주시비건립취지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전쟁과 침략이라고 하는, 입에 담기조차 무서운 말이, 성전(聖戰) 혹은 협화(協和)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던 수많은 청년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 갔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하고 읊었던 시인 윤동주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시인이 배웠던 도시샤의 설립자 니지마 조(新島襄)는 ‘양심이 전신에 충만한 대장부들이 궐기할’ 것을 말했습니다만, 시인의 생전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되뇌며, 양심이 명하는 바에 따라 그는 살았습니다. 그 치열한 삶의 모습을 우리는 흉내조차 낼 수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는, 혹은 저지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시인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싶은 것입니다.’

역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도시샤대 캠퍼스에서 나는 정지용과 윤동주를 기리며 뭉클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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