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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점토를 철사에 말면 꼬불꼬불 라면이 뚝딱

입력
2018.01.31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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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라면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라면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진짜와 싱크로율(일치 비율) 200%인 명품 가방부터 먹음직스러운 음식들, 아기자기한 소품들까지. 진열장에 당당히 늘어선 미니어처 작품들을 보자마자 주눅이 든다.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단 한번도 ‘수’나 ‘A’를 받아본 적 없는 자타공인 ‘똥손’ 기자가 23일 경기 고양시 한 공방에서 섬세함의 끝판왕이라는 미니어처 만들기에 도전했다. 난생 처음 도전해 볼 미니어처는 한국인의 대표 소울푸드(Soul Food) ‘라면’과 ‘치킨’. 너무 고난도인 건 아닌지 강사에게 묻자 “음식 제작이 미니어처의 가장 기초단계”라는 냉정한 답이 날아왔다.

라면이 들어간 뚝배기를 완성하는 모습.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8-01-23(한국일보)
라면이 들어간 뚝배기를 완성하는 모습.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8-01-23(한국일보)

라면의 기본은 무엇보다 면발. 밀가루 대신 ‘모데나(MODENA) 점토’에 물감을 조금씩 섞어 반죽한다. 클레이 건(clay gun)이라 불리는 기계에 반죽 덩어리를 밀어 넣자 가늘고 긴 면발이 뽑아져 나온다. 꼬불꼬불한 특징은 철사에 돌돌 감아 표현했다. 쌀알만한 계란 두 알과 송송 썬 쪽파, 당근도 비슷한 공정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면과 건더기를 엄지손톱 크기만한 뚝배기 안에 올려놓자 제법 진짜 라면 같다. 그 위에 실제 고춧가루를 섞은 마법의 가루를 뿌리자 매운 냄새도 풍겨오며 입맛을 돋우기까지 한다. 마지막으로 합성수지(레진)와 전용물감을 섞어 빨간색 국물을 만들어 부어 잘 굳히면 먹음직스러운 미니어처 라면 완성!

완성된 면발 위에 빨간 라면 국물을 붓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8-01-23(한국일보)
완성된 면발 위에 빨간 라면 국물을 붓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2018-01-23(한국일보)

“처음 하는 것 치곤 제법인데요.” 무심한 듯 던져놓는 강사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기세를 몰아 이번에는 라면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치킨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통닭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통닭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역시 모데나 점토를 이용해 닭다리 모양을 빚는다. 살이 두둑하게 오른 닭다리 위에 목공용 풀을 발라 튀김가루를 입히자, 당장이라도 입 속으로 직행시키고 싶은 닭다리 9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든 닭다리를 실제 크기의 100분의 1도 안 될 것 같은 치킨상자 안에 차근차근 쌓아 올렸다. 이어 갈색과 검정색 물감을 오묘한 콜라 빛깔이 나올 때까지 조금씩 섞자 톡 쏘는 탄산이 눈에 보일 듯 시원한 콜라까지 완성됐다.

두 시간 남짓 손 끝 감각에 몰두하고 나자, 먹음직스러운 한 상이 뚝딱 차려졌다.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자 그제서야 어깨와 목에 뻐근함이 몰려왔다. 등 한번 펼 생각도 채 하지 못하고 소인국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피로도 잠시, 완성 작품을 보고 있자니 뻐근함보다 더 큰 만족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23일 경기 일산시에 위치한 '걸리버 공방'에서 기자가 직접 미니어처 만들기에 도전해봤다. 한소범 기자

미니어처 제작은 점토를 빚고 종이를 접고 색을 칠하고 나무를 다듬는, 실로 손이 주도하는 종합예술이었다. 공방에는 미술학원 대신 미니어처 공방을 찾았다는 학생들 여럿이 저마다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었다. 일찍 미니어처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미술에 대한 흥미를 좀더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 정도.

다 늘어놓아도 손바닥만큼도 안 되는 크기지만, 최대한 실제처럼 만들려는 노력과 정성은 요리 못지 않았다. 게다가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음식과 달리 미니어처는 언제든 꺼내볼 수 있으니 만족감이 오래 지속될 것 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첫 미니어처 제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진열돼 있던 다른 작품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작게’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이 피어 올랐다. 치킨과 라면을 들고 공방을 나서면서, 강사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저, 다음 번에는 루이비X 가방을 만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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