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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한 달배기 안타까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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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한 달배기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15.07.06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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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5일만에 베이비박스→ 보육원

엎드려 재운 보육교사는 무죄 판결

한 아기가 2014년 4월 19일, 그러니까 태어난 지 5일 만에 버려졌다. 사연도, 이름도 알 길 없는 누군가가 막 낳은 딸을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 앞 베이비박스에 두고 잰 걸음으로 떠났다. 그저 피붙이의 생일이 ‘4월 15일’이라는 쪽지만 남긴 채.

키 50.1㎝에 몸무게 3.3㎏. “엄마” “아빠”라고 말해 보기도 전 부모와 생이별한 축복(가명)이는 건강하게 세상에 나온 아이였다. 눈, 코, 입,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까지 멀쩡했다. 축복이는 버림 받은지 6일 만에 서울 동작구의 한 보육원으로 갔다. 그 사이 교회의 신고를 받은 경찰이 유전자검사를 하고 사진을 찍어 축복이를 구청으로 넘겼고, 건강검진 등의 인계 절차들이 진행됐다.

그런 축복이가 조금씩 자라며 겪게 될 아픔을 이겨내기도 전에 겨우 생후 30일 만에 모진 세상을 떠났다. 그 해 5월 15일 새벽 4시30분쯤 축복이는 보육교사 권모(32)씨가 준 분유 120㎖를 먹었고, 트림도 잘 했는데 어쩐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권씨는 축복이를 이불 위에 엎드려 눕혀 1시간쯤 토닥거리면서 재운 뒤 다른 방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러 곁을 떠났다.

한 시간쯤 지나 다른 보육교사가 축복이가 잠든 방에 들어왔는데 아기의 몸은 축 늘어졌고 얼굴은 창백했다. 놀란 보육교사는 급하게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축복이는 응답하지 않았다. 119 구급대가 인근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담당의사는 사망진단서에 ‘토사물 흡입으로 인한 호흡부전’이 사인이라고 적었다. 엎드려 있을 때 토했다가 기도가 막혀 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축복이를 부검한 어른들의 판단은 ‘종합적으로 볼 때 사인 불명’ ‘영아급사증후군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함’이란 소견이 더해졌다.

보육교사 권씨는 축복이를 엎드려 재우고 보살피지 않은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됐지만 1심은 그녀에겐 법적 잣대로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김수일)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권씨는 영아 보육교사에게 요구되는 업무상 주의의무를 게을리 한 과실은 있다”면서도 “다만 (아기의)급사가 산모의 임신 중 흡연, 음주, 마약복용 등 태생적인 원인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 결과 사인이 불명확하다고 한 점에도 무게가 실렸다.

축복이처럼 관악구 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는 지난해 253명이었다. 2010년 4명,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아이를 다시 데려가는 부모는 20~30%에 그친다고 한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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