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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왜 이 나라의 냉정은 청년만 겨누는가

입력
2016.08.2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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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했다. 즉,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사회적 격차를 시정함으로써 국민과 미래 세대의 안전과 자유, 행복을 확보하는 것이 헌법의 제정 취지다.

국가는 위 헌법 이념에 맞춰 국민이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고, 현재의 소득 격차가 기회의 불균등으로 연결되는 걸 막을 의무를 갖는다. 이는 청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자리 정책은 그들을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기보다는 노동시장의 거래 대상인 상품 또는 인적 자원으로 파악한다. 관련 법제에서 노동시장 밖에 있는 청년은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젯거리로 취급될 따름이다. 인하대 로스쿨의 김린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는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제1조가 그 입법 목적을 “청년고용을 촉진하고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 점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청년고용촉진 특별법’에는 헌법이 선언한 ‘우리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에 대한 고려가 없다. 단지 청년을 빨리 노동시장으로 유도하여 사회적 불안 요소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만 보일 뿐이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에 관한 논쟁이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그것이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제도와 겹치는데도 ‘사회보장기본법’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과 일부 지원 내용이 취업 활동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점을 문제 삼는다. 정부의 이런 주장이 무조건 잘못되었다거나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 어디에도, 헌법이 국가 체제의 목표로 삼은 미래 세대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고민은 없는 듯하다. 이것은 우리 헌법이 정부에 희망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부모의 소득과 학력 등은 청년들의 일자리 수준과 연결되어 있다. 중상류층 가정의 자녀는 장기간의 준비를 통해 공무원 또는 정규직으로 진입하는 데 반해, 저소득 가정의 청년은 생계에 쫓겨 시간제, 기간제 등과 같은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청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꿈과 맞지 않는 직업훈련을 받고 아무 일자리나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는 아니다. 그들에게도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할 기회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정부가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에 대해 이렇게 치열하게 반대하며 직권취소 명령까지 내린 건 가혹하다.

저소득 청년에 대한 정부의 냉랭함은 재벌에 대한 정부의 그것과 대비된다. 법인세 감면 제도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이 부담하는 평균 실효세율은 전체 법인 평균치보다 낮은 16.2%에 불과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대기업에 유리한 비과세 감면 혜택 때문이다. 예컨대 2011년 삼성전자는 16조2,400억원의 영업 이익을 냈지만, 1조5,000억원을 감면받아 2조원 정도의 세금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시기 도요타가 부담한 법인세 부담률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재벌이 투자를 확대하거나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인세 개정 주장이 나올 때마다 기업 투자가 위축된다며 더 기다려 보자고만 한다.

기업에 대한 이런 온화함과 비교할 때, 청년을 위한 지방정부의 사업을 다투는 정부의 지금 모습은 냉정하고 조급하며 헌법 이념에도 맞지 않는다. 헌법이 약속한 ‘우리 자손의 자유와 행복’은 저소득 청년도 꿈꾸고 준비할 권리를 갖는 미래고, 정부는 이를 보장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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