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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애경은 왜 빠졌나

입력
2016.05.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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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에는 네 가지 독성성분(PHMG, PGH, CMIT, MIT)이 들어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 대상은 PHMG와 PGH를 원료로 사용한 옥시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케톡스 등 4개사뿐이다. 2011년 환경부가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CMIT와 MIT를 폐 손상 원인물질에서 제외한 때문이다. 이 원료를 사용한 애경과 이마트, GS리테일은 덕분에 수사망에서 빠져있다. 비난이 집중되는 옥시는 이들 기업에 좋은 방패막이다.

▦ CMIT와 MIT는 미국에서 살충제와 농약 원료로 쓰인다. 미국 환경청은 삼키거나 피부로 흡수했을 때 치명적이니 절대 흡입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쥐를 대상으로 한 독성실험에선 흡입 시 독성이 0.33㎎/ℓ로 나타났다. 이 성분을 ℓ당 0.33㎎ 흡입했을 경우 실험 동물의 절반이 죽는다는 의미다. 환경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이를 몰랐을까. 더구나 지난 1월 서울아산병원이 환경부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CMIT와 MIT 실험에서 폐 섬유화와 출혈, 조직 괴사 등이 발생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돼있다. 정부는 이마저 숨겨왔다. 이런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가 애경이 면죄부를 받은 이유다.

▦ 애경의 ‘가습기 메이트’는 2001년 출시돼 가장 오래 사용된 제품이다. 두 차례 조사에서 사망자만 27명이며, 피해자는 128명에 달한다. 이마트에 제조, 공급한 것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380명(사망 54명)에 이른다.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규모지만 언론은 물론 검찰도 주목하지 않았다. 한 피해자가 보관하고 있는 애경 제품 겉면에는 ‘천연 솔잎향의 삼림욕 효과’라는 뻔뻔스런 문구가 적혀있다. 애경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내자 “화학물질은 원래 고농도로 사용하면 독성이 있다”는 궤변도 서슴지 않았다.

▦ 환경부는 뒤늦게 CMIT, MIT 성분 제품을 포함해 피해 실태 재조사 계획을 밝혔다. 조사에는 6개월 이상 걸린다. 가장 큰 걸림돌은 공소시효다. 검찰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할 경우 공소시효가 7년이라 2008년 이전의 피해는 기소조차 할 수 없다. 이미 조사가 끝난 옥시 등도 공소시효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마당이니, 이제야 역학조사를 시작하는 애경 등 나머지 회사의 수사는 난관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그만큼 길어지고 업체는 빠져나갈 시간을 번 셈이다. 정부의 죄가 너무도 크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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