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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블록체인기술과 권력의 미래

입력
2018.02.11 13: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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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현재는 물론이고, 인간이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어느 한 순간도 그랬던 적이 없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자원의 생산과 배분에 있어서 시장 메커니즘을 압도하는 나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국가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의해 국가가 공동체 구성원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결정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공유된 시기가 있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시장이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실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발생하고 있는 시장실패를 국가가 정확하게 파악해서 그에 상응하는 개입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관점이다. 외부효과로 인해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다면 그 외부효과의 크기만큼 배출행위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그 방식에 따른 현실의 정책은 대부분 실패한다. 그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주체가 시장실패의 현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보장이 없고, 문제해결에 요구되는 능력 혹은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문제되는 시장실패의 상황과 관련된 거래비용이 충분히 낮다면 반드시 정부의 개입이 없더라도 당사자들 사이의 자발적 거래와 협상을 통해 외부효과를 내부화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에 대한 완벽한 논리적 설명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의 이름을 따서 코우즈 정리(Coase theorem)라고 불린다. 이 관점에 따르면, 시장실패의 상황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역할은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실패의 내용과 원인을 규명하겠다거나 결국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섣부른 대책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실패의 상황과 관련해서 어떤 거래비용이 발생하고 있는지, 높은 거래비용으로 인해 자발적 거래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 거래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고 필요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거래비용을 낮추는 대표적 방법은 공신력 있는 장부(원장; ledger)를 기록하고 그 장부의 기재내용이 정확함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장부의 기재권한, 그리고 그 기재내용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으로부터 현대 사회 권력의 핵심적 속성이 도출된다. 중앙정부와 중앙은행이 가진 권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이루어진 거래와 약속의 내용을 정확히 기록하고 그에 따른 각자의 사회적, 경제적 상태를 확인하는 데 있다. 따라서, 그 기록은 가능한 분리되고 독립된 상태로 보관되어야 하고 기록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은 승인된 소수에게만 매우 제한적으로 부여될 필요가 있었다.

분산원장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블록체인은 그와 같은 관점에서 혁명적 권력지형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주로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블록체인과 가상화폐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번지고 있는 이유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을 둘러싼 최근의 혼란을 가져온 국내 주요 정책결정자들이 그와 같은 큰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요 장관들이 쏟아낸 과격한 발언과 규제정책은 매우 수준이 낮은 것이었다. 시장과 국가의 역할에 관하여 본의 아니게 스스로 바보라고 인증한 몇몇 인사들에 대한 조치를 포함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따라가고는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정부가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한 세대 전 과거 사고의 프레임으로 미래세대를 지금처럼 힘들게 해서는 되겠는가. 충분한 능력발휘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래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또 다른 정현, 김연아, 심석희가 될 수도 있는 재능 있는 대한민국의 젊음에게.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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