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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작업으로 안정 찾다 1시간 후 "다시 물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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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작업으로 안정 찾다 1시간 후 "다시 물 찬다"

입력
2014.12.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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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오후 4시쯤 주변 선박에 SOS "왼쪽 경사 더 심해져… 구조 준비를"

퇴선 설득엔 "무슨 면목으로 살겠나"

한국인 2명 등 시신 8구 추가 수습, 선내 특수 방수복 안 입은 상태

이주영(맨 오른쪽) 해양수산부 장관이 4일 '501오룡호'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부산 서구 사조산업 부산지사를 찾아 실종선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장관은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사고 경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부산=연합뉴스
이주영(맨 오른쪽) 해양수산부 장관이 4일 '501오룡호' 사고대책본부가 꾸려진 부산 서구 사조산업 부산지사를 찾아 실종선원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 장관은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사고 경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부산=연합뉴스

러시아 서베링호에서 침몰한 사조산업 501오룡호의 선장과 다른 선박 선장들과의 교신 내용이 공개되면서 사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들이 구체화되고 있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1차 침수 후 배수작업으로 한때 안정을 찾았지만 2차 침수가 발생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사조산업 측은 사고 당일 오룡호 김계환 선장과 인근에 있던 96오양호 이양우 선장과 카롤리나77호 김만섭 선장의 교신 내용을 4일 공개했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오양호 이 선장은 오전 10시(현지시간)쯤 러시아 선박의 네벨스크 선장으로부터 기상이 매우 악화될 것이라 소식을 접하고 나바린항 쪽으로 피항했다. 이 선장은 피항 중 근처에 있는 오룡호 김 선장에게도 "날씨가 안 좋아진다고 하니 판단을 빨리 하는 게 좋겠다"고 교신했다. 이 교신 후 오룡호는 그물을 걷어 올리고 피항 준비를 시작했다.

1시간 후 오룡호 김 선장은 이 선장에게 “20톤 가량의 고기를 붓다가 선미를 통해 어획물 보관실로 바닷물이 들어가 빼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을 것 같다"고 교신했다. 하지만 30분쯤 후 김 선장은 다른 배에 있는 한국인 감독관에게 "어획물이 배수구를 막아 물이 잘 안 빠지고 워낙 많은 바닷물이 제때 배수되지 않아 배가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며 구조를 요청했다. 김 선장은 또 카롤리나호 김 선장에게 "타기실에도 바닷물이 들어와 조타가 불가능해 엔진을 정지하고 배수작업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카롤리나77호는 오후 2시 30분쯤 오룡호에 펌프 1개를 전달했다. 이후 오룡호는 유입된 바닷물의 절반가량을 퍼내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오후 3시 30분쯤 김 선장은 오양호 이 선장에게 "어획물 처리실에 물이 다시 차고 있다"면서 "배를 돌렸는데 기울어서 다시 (반대쪽으로) 돌린다"고 말했다. 이어 오후 4시쯤에 김 선장은 카롤리나호 김 선장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갑자기 처리실 수위가 높아지고 왼쪽 경사가 더 심해져 퇴선 해야겠으니 구조준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회사의 퇴선명령도 이때 이뤄졌다. 상황이 급격히 나빠진 것이다.

김 선장은 또 평소 형처럼 대하던 오양호 이 선장에게 "형님한테 마지막 하직인사는 하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이 선장은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선원들을 퇴선시키고 너도 꼭 나와야 한다"면서 설득했다. 그러나 김 선장은 "지금 배 안에 불이 모두 꺼졌다"면서 "선원들 저렇게 만들어놓고 제가 무슨 면목으로 살겠느냐"고 체념한 듯 말했다.

이후 오룡호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아 오후 5시 15분쯤 북위 61도 54분, 서경 177도 10분 위치에서 침몰했다.

4일 사고 해역에선 8구의 시신이 추가 인양됐다. 이번에 인양된 시신은 한국인 선원 2명, 인도네시아 선원 2명, 필리핀 선원 2명,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선원 2명이다. 이 중 한국인 선원 2명은 유천광(1항사·47)씨, 정연도(갑판장·57)씨로 확인됐다. 이로써 이번 사고로 숨진 선원은 20명으로 늘었으며, 7명이 구조됐고 33명은 아직 실종 상태다.

한편 사고 직후 구조됐다가 숨진 조기장 이장순(50)씨와 관련 오룡호에 비치됐던 특수 방수복을 입고 있었다면 저체온증으로 숨지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룡호에는 체온 유지 시간을 늘려 줄 수 있는 특수 방수복 74벌이 비치돼 있었지만 현재까지 구조된 선원이나 숨진 선원들은 이를 입지 않은 채 발견됐다. 모두 구명동의만 착용했다.

방수천 같은 특수재질 원단으로 만들어진 특수 방수복은 바다에 빠졌을 때 저체온증에 빠지는 시간을 늦출 수 있다. 오룡호에 특수 방수복이 비치된 것은 사조산업이 러시아와 합작 운영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원양 어선에서 조업하는 선원들의 안전을 위해 의무적으로 특수 방수복을 비치하도록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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