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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송송 계란 탁!… 영혼을 달래는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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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송송 계란 탁!… 영혼을 달래는 라면

입력
2015.10.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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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으로 보는 세상 <2> 소울푸드

[편집자주] “라면의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소설가 김훈은 신간 ‘라면을 끓이며’에서 라면에 끌리는 이유를 이렇게 정의했다. 한국인과 라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반세기가 넘도록 서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 라면의 문화적 가치를 3회에 걸쳐 재조명한다.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불조절이다. 서울 종로구 화동의 '라면 땡기는 집'의 경춘자씨는 "라면은 센 불에 끓여야 맛있다. 뚝배기에 끓일 땐 잔열이 남아 있으므로 설익혀 내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비법은 불조절이다. 서울 종로구 화동의 '라면 땡기는 집'의 경춘자씨는 "라면은 센 불에 끓여야 맛있다. 뚝배기에 끓일 땐 잔열이 남아 있으므로 설익혀 내는 게 맛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당신은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때 면을 먼저 넣는가, 스프를 먼저 넣는가. 파를 썰어 넣는가, 넣지 않는가. 계란을 풀어 넣는가, 풀지 않는가.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법은 정답이 없다. 음식에는 기호가 있고, 각자의 경험과 선택에 따른 입맛이 '맛'의 기준이 된다.

'맛있는 라면'의 정답은 없지만 '맛있는 라면'에 대한 추억 교집합은 있다. 태어나 처음 먹어본 라면, 군대에서 별식으로 먹던 라면, 난생 처음 끓여먹은 라면 등이 예다. 인스턴트 라면이 채운 허기가 그저 일차적인 배고픔만 뜻하지는 않을 터. 우리는 왜 라면을 두고 '영혼을 달래는 음식'이라 부르게 됐을까.

파와 싱싱한 야채를 곁들이면 라면 국물의 시원한 맛을 살릴 수 잇다.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파와 싱싱한 야채를 곁들이면 라면 국물의 시원한 맛을 살릴 수 잇다.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 기름 동동, 고깃국 닮은 별식

'집밥'의 의미가 강력했던 1960~70년대, 라면은 '별식'이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물론 꽁치나 고등어를 구경하는 때도 손꼽던 시절, 어머니들은 늘 식구들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정부의 혼분식장려정책에 맞춰 라면이나 빵, 밀가루를 소비해야 했고, 이때 라면은 ‘국밥’과 같은 기능을 했다. 고기를 양껏 먹을 수 없으니 라면 스프 한 봉지로 우려낸 고기 국물에 국수로 양을 불려 식구들의 입을 메운 것이다.

5060세대의 라면에 얽힌 추억은 자장면만큼이나 애틋하다. 11세 때 처음 맛본 라면의 고기 맛을 잊지 못해 줄곧 즐겨 먹는다는 이순희(58·여)씨는 "부엌 찬장에 라면 한 박스가 있었는데, 어머니께선 칭찬받을 일이 있거나 아픈 형제가 있을 때 보물처럼 꺼내 끓여주시곤 했다"며 "5남매를 먹여야 하니 국수로 양을 늘리고 김치를 썰어 넣어 심심한 맛이 났지만 어머니만의 특별식이었다"고 말했다.

주영하 음식인문학자 겸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찌개처럼 끓여 먹는 라면의 소비 방식이 '국밥'과 닮아 우리 정서와 맞아 떨어진 면이 있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조미된 면에 끓는 물을 붓던 일본 초창기 인스턴트 라면 방식과 달리 한국의 라면은 물을 끓인 후 스프와 면을 넣는 '찌개형 조리법'이었다”며 “국물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라면에 파·계란·김치 등의 식재료를 더해 찌개처럼 끓여 국물 맛을 더했고, 이런 식성을 간파한 라면회사들은 이미 1970년대부터 소고기·육개장·설렁탕 맛 등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 "오늘은 나도 라면 요리사"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하루에 열 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1983년 만화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클이 둘리, 도우너와 함께 부른 '라면과 구공탄'의 가사다. 노랫말처럼 라면은 별식에서 주식으로 변모했다. 산업화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전통적인 '집밥'의 기능은 점점 퇴화됐고, 그 자리를 인스턴트 라면이 메웠다.

한국인들이 도전하는 첫 요리가‘라면 끓이기’로 굳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별다른 조리도구나 시설도 필요 없고, 고난도의 실력을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셰프 겸 칼럼니스트 박찬일씨는 “고도성장기시절 라면은 어머니의 손맛을 낼 만한 조리실력이 없는 맞벌이 가정의 청소년이나 꿈을 위해 도시로 상경한 청년들의 주식이었다”면서 “지금도 끼니를 해결해야 할 고민에 놓인 아이들이나 1인 가구, 소외된 계층에는 여전히 주식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라면을 끓이며 요리의 초보적인 기술을 익히고 있다. 물의 양과 간의 조절도, 화력에 따른 면발의 탄력도, 왜 많은 양의 라면을 삶으면 맛이 없는지도 몸으로 부딪혀 배운다. 일주일에 서너 번 라면을 먹는 자칭 '라면마니아' 김윤태(64)씨는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요리를 배우거나 할 생각은 못했다”면서 “사회 초년병 시절 지방에서 홀로 근무할 땐 라면에 이것저것 부재료를 넣어 ‘잡탕’처럼 끓여 먹었는데, 자연스럽게 김치찌개 끓이는 법도 터득했다”고 말했다.

라면 끓이는 방식과 용기도 개인 특성에 맞게 진화했다. 라면의 대명사인 양은냄비대신 뚝배기를 사용해 요리하는 모습.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라면 끓이는 방식과 용기도 개인 특성에 맞게 진화했다. 라면의 대명사인 양은냄비대신 뚝배기를 사용해 요리하는 모습.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 서민의 삶, 따뜻함으로 위로

1989년 삼양라면의 우지파동(1997년 대법원 무죄) 이후 먹거리 안전 공방으로 외면 받았던 라면. 아이러니하게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라면 시장은 성장세를 회복했다. IMF 관리체제가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고, 값싸고 간편한 먹거리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서울에서 손꼽는 라면집인 종로구 화동 풍문여고 옆 '라면 땡기는 날'도 IMF 사태 1년 후인 1998년 문을 열었다. 외환위기 탓에 경기가 어려워져 세가 나가지 않자, 주인 경춘자(73)씨가 라면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1,800원이던 라면 한 그릇은 현재 3,000원. 경씨는 "라면은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들이 찾는 메뉴인데 값이 비싸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부자이건 가난하건, 누구나 라면을 먹을 수 있지만 라면을 관통하는 건 서민정서다. 우리는 왜 라면을 먹으며 위안을 얻는 걸까.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만성스트레스나 우울증에 시달리면 '세로토닌' 호르몬 생성이 감소하는데, 뇌는 이 호르몬 수치를 높이기 위해 탄수화물 섭취 욕구를 증가시킨다"면서 "굳이 라면의 탄수화물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얻을 필요는 없지만, 라면도 그런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권장소비자가격 800원짜리 라면으로 얻는 원초적인 칼로리로 마음의 허기를 달래는 셈이다.

김지현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조영현인턴기자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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