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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티렉스] 독설가 김구라, 롱런의 비결

입력
2015.08.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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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라(45)는 ‘장수 MC’의 계보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김구라’라는 예명(김구라의 본명은 김현동이다)으로 처음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게 2000년이었다고 하니, 벌써 16년째 방송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고정 프로그램은 무려 9개.

김구라는 연구 대상이다. 매우 드물게도 ‘트러블 메이커’, ‘비호감’, ‘독설가’ 캐릭터로 방송계에서 장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가 그런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잘 나가는지 생각해 봤다. 그 동안 그가 ‘3단 변신’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라디오스타' 등 무려 9개의 고정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김구라.
'라디오스타' 등 무려 9개의 고정 프로그램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김구라.

1단계: 마구 물어보는 ‘신개념 독설’

인터넷방송 김구라가 ‘마구잡이로 유명인들을 비하하고 욕하는’ 캐릭터였다면, ‘라디오스타(MBC)’에서는 약간 달라지기 시작한다. ‘차마 못 물어봤던 걸 물어보는’ 캐릭터로의 변신이다. 그리고 바로 이 덕분에 김구라는 공중파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지난 29일 ‘라디오스타’ 한 장면을 보자. 요리사 정창욱이 재일동포 4세라는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불쑥 김구라가 묻는다.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요?”

김구라는 서장훈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서장훈이 갖고 있는 강남 빌딩의 시가를 거침 없이 까발려 버렸다. 서장훈이 난감해 하자 “아니, 팩트잖아”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친다.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게스트가 밝히기 꺼려하는 눈치일 때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김구라는 다르다. 집 얘기가 나오면 느닷없이 “자가냐 전세냐”를 묻는 건 다반사다.

어느 방송에서도 묻지 않는 질문. 심지어 ‘라디오스타’의 다른 고정패널들도 김구라 만큼 어이없을 정도의 당당한 태도로 묻진 않는다. 또 대부분 그 거침 없는 질문은 ‘돈’이나 ‘가정사’, ‘학벌’ 같은 원초적(?)인 것들이 많다. 김구라는 자신의 원초적 관심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의 연예인이 나오면 “내가 학벌 좋은 사람들한테 진짜 약해”라며 너스레를 떨곤 한다. 어떨 때는 시원하고, 어떨 때는 불편한 이런 모습이 바로 김구라다.

그리고 이런 식의 질문을 하는 김구라가 있기 때문에 ‘라디오스타’가 오랜 기간 ‘게스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시청자를 재미있게 만드는’ 그 본질적인 성격과 재미를 유지하고 있다. 반대로 초반엔 ‘라디오스타’보다 훨씬 큰 프로그램이던 ‘황금어장 무릎팍도사(MBC)’는 후반부엔 지나치게 게스트를 배려하고 치켜세워서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라디오스타’야 말로 가장 김구라 다운 프로그램이다.

jtbc '썰전'에서 김구라의 박학다식함은 빛을 발한다.
jtbc '썰전'에서 김구라의 박학다식함은 빛을 발한다.

2단계: 은근히 아는 게 많다

김구라가 장수 MC로 버틸 수 있었던 의외의 힘이 ‘잡학다식함’이다. 김구라는 그의 잡학다식함을전혀 숨기지 않고 과시한다. 어떤 부분은 대본의 힘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팝 음악과 가요에 대한 애정과 지식만큼은 오타쿠 수준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김구라가 ‘복면가왕(MBC)’에서도 가요계 전문가들과 나란히 앉아서 고정출연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 이 덕분에 ‘투덜이 + 똘똘이스머프’ 캐릭터도 생겼다. ‘썰전(JTBC)’에서 이철희와 강용석 사이의 중심을 잡으면서 각종 시사 뉴스를 촌철살인의 비유로 알기 쉽게 설명하는 진행을 하는 것도 김구라 외엔 아무도 못할 듯싶다. ‘집밥 백선생(tvN)’에선 백종원에게 늘 툴툴대면서도 요리 수업을 가장 센스 있게 캐치하고 받아들이는 학생이 바로 김구라다.

3단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김구라는 2012년 한 차례 잠정은퇴를 한 바 있다. 과거 인터넷방송에서 했던 ‘정신대 비하 발언’이 다시 공개됐기 때문이다.

결코 가벼운 실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라디오스타’나 ‘썰전’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김구라의 역할이 ‘대체불가’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김구라가 이후 또 다른 방향으로 변신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구라는 최근 부인이 보증을 잘못 서서 돈을 다 날렸다는 이야기를 ‘자학 개그’ 소재로 활용했다. 또 아들 동현 군에 대한 걱정도 솔직하게 다 까발린다. 한때 ‘아들 앞세워서 돈 번다’고 욕까지 먹었던 그였지만, 수험생이 다 된 아이가 공부엔 뜻이 없고, 그렇다고 다른 분야에 열정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게임이나 하면서 힘든 일을 안 하려 한다는 고민은 놀랄 만큼 솔직하다. 여기에 김구라가 극심한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생겼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은근히 동정표를 얻기도 했다.

또 하나. 요즘 김구라는 독설 속에 은근히 배어 나오는 따뜻한 충고까지 해주고 있다. 그는 ‘라디오스타’에서 후배 개그우먼 이국주에게 “살이 문제가 아니라 연예인으로 오래 가려면 염치가 없어야 된다. 철도 들면 안 된다”고 말해준다.

결국 장수의 비결은 그런 것일까. 대체불가능한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이 있어야 하고, 또 끊임 없이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무슨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얘기 같기도 한데,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정말 와 닿는다. “오래 가려면 염치가 없어야 한다. 철도 들면 안 된다”는 말.

방송 칼럼니스트

김구라는 말한다. "오래 가려면 염치가 없어야 한다. 철도 들면 안 된다." MBC 홈페이지 캡처.
김구라는 말한다. "오래 가려면 염치가 없어야 한다. 철도 들면 안 된다." MBC 홈페이지 캡처.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매주 수요일 밤 11시15분 MBC TV

들리는 TV라는 컨셉으로 매주 새로운 출연자들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

★시시콜콜 팩트박스

1) ‘라디오스타’는 2007년 5월 ‘무릎팍 도사’와 함께 ‘황금어장’을 이루는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한때 ‘무릎팍 도사’가 잘 나갔을 때는 ‘라디오스타’가 편집 끝에 5분만 방송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2010년 ‘무릎팍 도사’는 폐지되고 현재는 ‘라디오스타’만 남았다.

2)’라디오스타’의 프로그램 슬로건은 ‘고품격 음악방송’이다. 김구라는 방송 후반부에 게스트들이 소개하는 노래를 들으며 팝에 대한 지식을 자주 뽐내곤 한다.

3)김구라는 현재 ‘집밥 백선생(tvN)’ ‘호박씨(TV조선)’ ‘라디오스타(MBC)’ ‘무비스토커(채널CGV)’ ‘썰전(JTBC)’ ‘세바퀴(MBC)’ ‘동상이몽(SBS)’ ‘마이리틀텔레비전(MBC)’ ‘복면가왕(MBC)’에 고정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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